고 김태환 전 한국노총 충주지부장이 사망한 지 꼭 10년이 흘렀다. 그는 2005년 충주지역 레미콘노조 파업에 연대하다 회사가 대체투입한 레미콘 차량에 치여 숨졌다. 김 전 지부장의 죽음은 특수고용직 투쟁에 불을 붙였다. 정규직이었지만 살아생전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스스로 헌신해서 이끌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각별하다. 한국노총은 추모사업회를 설립해 매년 김 전 지부장을 기억한다. <매일노동뉴스>가 김 전 지부장을 기억하고 현재 의미를 찾는 이들의 목소리를 3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김봉석 기자

“조금씩 적응하고는 있는데, 상급단체 회의나 행사에 참여하면 여전히 낯설어요.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도 대우와 처우는 많이 좋아졌어요. 정말 엄청 고생했는데, 노조 안 만들었으면 지금도 무시당하고 살았겠다 싶어요.”

한국마사회시간제경마직노조가 제3회 김태환 노동상 수상단체로 선정됐다. 김희숙(53·사진) 노조위원장은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아직도 노조활동이 어색한 우리에게 이처럼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노조는 전국 경마장과 장외발매소에서 마권을 발매하는 계약직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다. 조합원은 1천980명이다. 일주일에 이틀, 주당 14시간40분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다.

김태환 노동상 심의위원회는 “초단시간 계약직 노동자로 다른 노동자에 비해 현저하게 열악한 조건에서도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활동을 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심의위는 또 “사용자의 부당한 탄압 속에서도 부단한 노력과 실천, 파업을 통해 단체협약 체결이라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고 평가했다.

2012년 6월 노조 결성 당시에는 조합원이 33명에 불과했다. 김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금세 늘어나 한때는 2천800명이나 됐었는데 사측의 탄압이 계속되면서 점점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노조는 왜 만들었을까. 김 위원장은 “발매직은 마사회에서도 최하위 직군이고 모두 여성”이라며 “불합리한 처우는 물론이고 관리자들의 인격비하도 비일비재했다”고 털어놓았다. 노조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너희들이 뭔데 노조를 만들어"라는 비아냥거림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노조 설립 1년6개월 만인 2013년 12월22일 하루파업에 돌입했다. 상급단체나 노조활동가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법률자문을 해 주던 공인노무사 한 명이 파업을 도왔다. 노조가 한국노총 공공노련에 가입한 것은 지난해 3월이다. 그는 당시 부위원장으로 활동했음에도 “노조활동에 파업이라니, 사실 무섭고 떨렸다”고 회상했다.

파업 후 이듬해 2월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단협을 체결하고 나서는 노사관계가 오히려 좋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노조탈퇴를 종용하던 사측의 행위가 사라졌다. 일상적인 반말이나 인격모독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처우가 좋아졌다. 정규직만 받던 사내복지기금 혜택을 받고, 임금도 예전보다 올랐다. 없던 식대수당이 생긴 것도 작지만 큰 기쁨이다.

김 위원장은 “노조가 없었으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일들이 많이 이뤄졌다”며 “처음 2년은 엄청 고생했는데, 지금은 뿌듯하고 보람도 많다”고 웃었다. 고 김태환 전 한국노총 충주지부장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세히는 모르지만 비정규직을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신 열사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이런 큰 상을 주시니 책임감만 커져 버렸다”며 “고인의 뜻과 노동상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초단시간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세상에 알리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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