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메르스. 스마트폰에 이 글자를 찍어 넣는다고 몇 번을 다시 써야 했다. 스마트폰 글자판이 작다고 나는 투덜댔다. 저녁 9시 용인행 좌석버스에 앉아서였다. 이리저리 만져서 겨우 스마트폰 글자 크기를 키워 ‘메르스’를 스마트폰에 쓸 수 있었다. 지난주 수요일, 그러니까 지난 3일이었다. 그리고서 지금 퇴근인데 기침소리가 겁난다고, 아침 출근하면서는 서울행 좌석버스에 기침하는 승객이 네 명이 있었고 별걸 다 헤아리는 수상한 시절이라고 나는 스마트폰에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옆자리 아주머니가 기침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하며 차창을 열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셨다. 메르스, 출퇴근할 때마다 타는 버스도 떨게 하는 바이러스가 이 나라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어째서 메르스는 공포일까. 40%라니 걸렸다 하면 40%는 죽은 목숨이라고 치사율이 높아서일까. 그렇다면 메르스보다 치사율이 훨씬 높은 질병에는 온 나라가 무섭다고 야단이어야 했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서 감염되는 전염병이라서 나도 감염될 수 있어서일까. 다른 전염병도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이 많다. 그런데 지금 분명히 콜레라·에이즈보다 메르스가 무섭다고 이 나라는 벌벌 떨고 있다. 백신이 있고 치료제가 있고 감염되지 않을 방법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병을 통제할 수 있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 메르스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공포다.

2. 이날 버스에서 쌍용차 평택공장 노동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를 스마트폰에서 봤다. 뉴스는 복지부가 지난 1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메르스 확진자와 접촉한 노동자들을 자가 격리시키지 않고 단순 귀가조치 시켰다고, 이에 대해 쌍용차 관계자는 “감염됐다는 확신이 없는데 격리를 하고 집에서 못 움직이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느냐. 일단 집에 계시라고 당부는 드렸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다른 지역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단순 공간접촉자에 대해서도 자가 격리를 시행했다며 자가 격리 대상자는 하루 두 번 복지부의 확인 전화를 받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활수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뉴스는 쌍용차 평택공장의 일을 비판하고 있었다. 나는 전 공정에 투입되는 '릴리프' 요원이라니 평택공장 전체가 메르스의 공포가 내려와 앉았는지 모르겠다고 뉴스를 읽었다.

3. 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을 찾아봤다. 법률이 어떻게 정해서 예방하고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이 나라에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해 정한 법률, 즉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읽었다. “국민 건강에 위해(危害)가 되는 감염병의 발생과 유행을 방지하고, 그 예방 및 관리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 건강의 증진 및 유지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법률은 제1군감염병으로 콜레라 등을, 제2군감염병으로 디프테리아 등을, 제3군감염병으로 말라리아 등을 정하는 등 이 법률에 의한 예방과 관리의 대상이 되는 법정감염병에 관해서 정의하면서 “국내에서 새롭게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감염병 또는 국내 유입이 우려되는 해외 유행 감염병으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감염병”을 제4군감염병으로 정했다. 그러면서 “세계보건기구가 국제공중보건의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감시대상으로 정한 질환으로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하는 감염병”을 법정감염병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했으나 복지부령이나 복지부 장관이 고시하는 감염병에 메르스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럼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르스에 대한 정부 기관의 대책은 무엇이고 환자 및 접촉자에 대한 관리지정병원의 격리입원과 자가 격리 조치는 무엇인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해 정한 법률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는 적법한 국가권력의 행사가 아니라는 것인가. 복지부령이나 고시야 복지부 장관이 스스로 마련해서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니 복잡한 절차나 오랜 시간이 소요될 일도 아니다. 위 법률이 위임한 바에 따라 복지부 장관은 당장이라도 메르스를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하면 될 일이다. 이렇게 내가 감염병에 관한 법률을 읽고 있을 때 이미 장관이 지정했는지도 모를 일이고 그랬다면 위에서 한 내 말은 쓸데없는 말이 될 것이다.

사실 이렇게 내가 감염병에 관한 법률을 읽어 본 것은 노동자의 일에 관해서 어떻게 정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오거나 접촉자가 발생한 지역에서 어린이집부터 초등학교·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쉰다는데 노동자는 쉰다는 말이 없을까 해서였다. 단체라서 학교를 쉰다니, 그런데 어째서 지긋지긋하게 일하는 단체인 작업장은 쉰다고 하지 않는 것인지. 확진 환자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학교마다 휴업이다 휴교다 하는데 확진 환자가 나왔어도 공장과 사무실은 돌아간다. 이상하다. 어째서일까. 학교가 호들갑인가. 내 머리를 의심했다. 그래서 법률을 찾아서 노동자도 쉴 수 있는 법이 있는지 읽어 봤다.

혹시 나도 모르게 복지부 장관이 메르스를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해 놓았다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해 정한 법률이 적법하게 적용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법률은 “감염병 환자 등이 있는 장소나 감염병 병원체에 오염됐다고 인정되는 장소의 교통을 일정한 기간 차단”하고 “감염병 병원체에 감염됐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적당한 장소에 일정한 기간 입원 또는 격리시키”는 조치 등 현재 메르스 대책으로 정부가 하고 있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제47조),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관할 지역에 대한 교통의 전부 또는 일부를 차단”하거나, “흥행·집회·제례 또는 그 밖의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도 있다고 감염병 예방조치들을 정하고 있다(제49조). 그리고 법률은 “감염병 환자등은 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업무의 성질상 일반인과 접촉하는 일이 많은 직업에 종사할 수 없고, 누구든지 감염병 환자 등을 그러한 직업에 고용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제45조 제1항). 아무리 찾아봐도 공장과 사무실 등 작업장에서 학생들이 쉬듯이 노동자가 일하는 것을 금지·제한하는 조치에 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감염병에 관한 법률에 없으니 노동자를 위한 법, 노동법에서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 작업장을 쉰다는 법을 찾아봤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는 감염병·정신병 또는 근로로 인해 병세가 크게 악화될 우려가 있는 질병으로서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질병에 걸린 자에게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근로를 금지하거나 제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제45조), 노동부령인 동시행규칙은 사업주가 전염될 우려가 있는 질병에 걸린 사람 등에 대해서 근로를 금지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16조). 감염병 환자의 근로를 금지하는 것이니 위 감염병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규정일 뿐이다. 그렇다고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려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으니(제26조) 노동자는 어렵다.

4. 그러니 메르스가 무섭다고 공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연차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노동자는 무단결근이 된다. 아무리 확진 환자가 근무하던 공장이라도 무섭다고 밖으로 나가면 노동자는 무단이탈이 된다. 징계 등으로 사용자로부터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한 사용자의 징계가 부당하다는 법은 없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서 노동자는 사용자에 종속돼서 근로를 제공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2조제1항 제4호 참조). 공포가 덮쳐 와도 제 맘대로는 벗어날 자유 없는 세상은 겁나야 하는 거 아닐까. 메르스가 공포라면 메르스에서 벗어날 자유가 없는 세상도 공포라고 해야 한다. 지금 이 나라에서 메르스 공포에 사로잡힌 이유, 그것은 벗어날 자유가 없다는 공포일 것이다. 통제되지 않는 감염병이 언제 나를 습격할지 모른다는 공포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에게 이 세상은 공포여야 한다. 그런데 아니다. 자유 없는 공포의 세상이라고 절규하다 지쳐 분노해야만 한다. 그런데 아니다. 오직 기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자유 없는 세상을 안도하며 무단 결근과 이탈 없이 살아 내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내려앉은 세상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메르스보다 무서운 세상인 것인지, 그걸 이겨 내고서 살아가는 노동자가 무서운 것인지 모르겠다. 공포의 세상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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