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취업규칙 변경지침’은 예상대로 노·정 충돌을 불렀다. 28일 노동부가 주최한 공청회는 노동계 반발로 무산됐다. 취업규칙 변경지침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인화성이 높다는 방증이다. 노동부도 이를 인지했기에 노사정 합의를 거쳐 취업규칙 변경지침을 마련하려 했다. 노사정 합의 결렬 후 노동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곧바로 부작용이 나타났다. 취업규칙 변경지침은 노정 갈등을 넘어 노사 갈등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셈이다.

취업규칙은 ‘근로자에 대한 근로조건과 복무규율에 관한 기준을 정한 규칙’이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규제하고 있다. 상시 10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작성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취업규칙 작성·변경을 하는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변경 내용이 근로자에게 불리할 경우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에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권이 명시된 이유는 분명하다.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노동자 기득권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을 막고자 함이다. 이는 근로자 보호의 정신, 집단적 근로조건의 대등 결정이라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부합한다.

반면 취업규칙 변경지침은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아니다. 노동부는 취업규칙 지침을 대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가 만든 복수노조·타임오프 매뉴얼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근거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통상임금 노사 지도지침에 이어 취업규칙 변경지침도 법률이 아닌 대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법률 해석 독립성을 고려할 때 노동부 행보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불길을 댕기는 불씨와 같은 취업규칙 변경지침의 내용은 무엇일까. 노동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이것이 근로자에게 근로조건의 불이익변경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표현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춘 것으로 보고,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단, 사용자는 과반수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에게 충분하게 협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취업규칙 변경지침의 명분은 ‘정년 60세 정착’이다. 노동부는 정년연장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의 일환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년연장은 법률로서 보장하는 것이지만 임금피크제는 법적 강제사항이 아니다. 정년연장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노사의 선택 사항일 뿐이다. 그런 임금피크제는 근로자의 급여 수준을 저하시키는 측면에서 분명 불이익변경에 해당한다. 그런데 노동부는 불이익변경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추면 예외로 여기자고 강변한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근로기준법의 근간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과반수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라는 취업규칙 변경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가 ‘동의’를 ‘협의’ 수준으로 저하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취업규칙에 규정된 집단적 동의권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임금피크제는 노사 간 단체교섭을 통해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부는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노동조합과 단체교섭 기능과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한다. 노사 간 대등한 단체교섭을 바탕으로 임금 및 근로조건을 결정해 온 민주적 관행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다음달부터 노사의 임금·단체협약 갱신협상이 본격화된다. 노동부의 취업규칙 변경지침이 불러오는 사업장 풍경은 우울하다. 사용자는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시도하는 반면 노동조합은 이를 단체교섭 테이블 메뉴로 올리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사 충돌은 불 보듯 뻔하다. 물론 여기까지는 10%의 조직노동자와 관련된 풍경이다. 나머지 노조가 없는 90%의 사업장에선 사용자 일방의 취업규칙 변경이 거리낌 없이 시도될 공산이 크다. 결국 취업규칙 변경절차를 포함한 근로기준법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부가 대법원 판결이라는 미명 아래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사용자들에게 쥐어주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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