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이른바 노사관계(industrial relations) 연구는 '조직화된 사회적 이해(organized social interests)'의 정치적 선택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는 상이한 이해관계를 지니는 집단들이 조직돼 있으며, 그러한 이해의 실현은 그들끼리의 갈등과 조정의 정치적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해란 크게 노동과 자본을 말한다. 이들은 각각 조직노동(organized labor)과 조직화된 비즈니스(organized business)라고 달리 칭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노동시장이라고 하는 수단적 장을 통해 노동력을 동원하고 사용하는 한 사회적 이해라는 것은 노동력 구매자(자본·비즈니스)의 이해와 판매자(노동)의 이해로 양분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민주적 정체(polity)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상이한 두 이해집단 간 정치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벌어져야 하며, 그것에 국가는 어느 정도로 개입하며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저마다 규정을 한다.

자본주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에서 국가의 역할이나 조직화된 이해당사자들의 역할이 사회마다 동일하지 않음을, 즉 행위자들 각각의 역할 범위나 그들끼리의 관계설정이 상이함을 인정한다. 크게 보아 국가의 힘이 강하고 그 역할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비즈니스의 힘이 강하고 그들에게 유리하게 제도와 시스템이 설계돼 있는 자본주의, 노동의 힘이 강한 자본주의 등 세 가지 유형의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어떤 자본주의에서건 노사관계는 다양한 층위(level)를 갖는다. 흔히 구분하듯 국가수준, 업종이나 지역수준, 그리고 기업수준 등 크게 셋으로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앞서 말한 이해정치(interest politics)가 다층적인 장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 층위별로 의제는 고유한 성격을 갖는다. 국가수준에서는 제도와 정책에 대한 문제를 놓고 이해의 각축(contest)이 벌어진다. 기업수준에서는 기업경영의 주요 의제와 그것이 해당기업 종업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의 문제를 놓고 상이한 이해대변자끼리 정치적 경합을 한다. 업종과 지역수준에서는 또 그에 걸맞은 독특한 의제가 이해정치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라고 하는 국가수준의 노사관계 협상장에서 나라 노동시장 전체의 성격을 재구성하는 문제를 놓고 노·사·정 간에 상이한 이해를 조정하기 위한 한판 격돌이 전개됐다. 노사정위원회 같은 상설화된 국가수준의 노사관계 협의기구는 노동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한 나라 혹은 그것이 매우 약하고 대신 비즈니스에 보다 유리하게 제도가 짜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편이다. 한국이나 남유럽 같이 국가가 중심이 돼서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노동의 저항이나 운동이 부분적으로 두드러진 경우에 주로 발달하곤 한다.

그런데 그러한 나라에는 대개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경제정책을 독점적으로 주관하는 관료기구가 동시에 발전해 있다. 최근 수세기 동안 이들 나라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열풍이 불면서 친비즈니스적인 개혁이 단행됐고, 주된 추진주체는 바로 경제관료기구였다. 이는 한편으로는 노동의 저항을,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정 간 협의의 장 활성화를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진 정책협상의 장이 마지못해(relucantly) 구축되거나 그저 장식적으로(decorationally) 활용되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의 실질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는 경제관료기구가 이러한 장에 자신을 어느 정도 복속시키느냐(binding) 하는 문제다. 그것은 최고권력이 얼마나 국가수준의 노사관계 협상장에 힘을 실어 주고 관료기구를 제어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1998년 한국에서 노사정위가 커지고 사회협약도 체결되면서 이러한 장이 활성화됐던 이유는 당시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속에서 경제관료를 일시적으로나마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으로 들려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이번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정책협의가 실패한 배경으로 경제관료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지적한다.

최고권력은 겉으로는 노사정 협상을 장려했지만 속내는 달랐던 것 같다. 노조가 받기 힘든 '킬러(killer) 토픽'인 해고규제 완화 같은 치명적인 의제를 정부측 대표가 고수하고 막판까지 협상 줄다리기를 하다 판이 깨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해 타협지향적인 행위선택을 유도하지 않았다.

결국 국가 중심적으로 자본주의를 이끄는 나라에서 사회적 협의가 장려되려면 무엇보다 정부 의지가 중요하다. 그 누구를 탓한다 한들 협상의 판은 깨졌다. 노동시장 개혁은 앞으로 더 큰 갈등비용을 들이며 진행될 수밖에 없다. 공익지향적인 관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는 곧장 단체협약 가이드라인이나 공공부문 임금피크제의 전일적 실행 등 국가주의적 경로를 다지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고, 한국노총은 총파업을 예고하며 전의를 키우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하반기에 노정 간 한판 대결이 불가피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울상 짓는 이들은 노동시장의 높은 문턱에서 좌절해 있는 청년들과 대책 없이 노동시장 밖으로 떠밀리거나 임금삭감을 강요당하는 중고령 근로자들이다. 모두를 살리는 논의의 장을 다시 만들 수는 없을까.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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