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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 고공농성 마친 통신비정규직 강세웅·장연의씨] "저녁이 있는 일상과 실천·연대하는 삶 살고 싶어요"

80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강세웅(45·사진 왼쪽)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조합원과 장연의(42)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조합원이 지난달 26일 땅으로 내려왔다.

이들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 장기파업 해결과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촉구하며 서울중앙우체국 옥외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했다.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영자이자 하청업체의 불법 재하도급업체 직원 신분이었다. 통신케이블업계 간접고용 노동자 대다수가 이들과 마찬가지 처지에 놓여 있다. 그랬던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한 끝에 지난달 재하도급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임단협을 체결했다.

두 사람은 현재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풍랑 위 배처럼 흔들리고 냉장고처럼 추웠다"던 광고탑 생활이 길었던 만큼 지금도 어지럼증을 앓고 있다. 이른바 '땅멀미'다. 그럼에도 농성을 마친 홀가분함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4일 오후 녹색병원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 건강 상태는 어떤가.


장연의 : 아직은 어지럼증이 심하다. 주로 누워서 지냈다. 화장실을 아직 한 번도 못 갔다. 고공농성 동안 대소변 처리가 신경 쓰여 일부러 식사를 적게 해서 그런지…. 지난달 27일에는 어머니를 만났다. 이제는 스타케미칼 해고자 차광호씨가 더 걱정이라고 하셨다. 원래 노조를 잘 모르셨는데 고공농성 시작하고 나서 관심을 갖게 되신 것 같다.

강세웅 : 일단 화장실이 옆에 있는 게 가장 좋다.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도 좋고. 좁은 광고탑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 보니 많이 답답했다. 다만 광주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신다. 걱정하실까 봐 농성하는 걸 끝까지 숨겼다. 그런데 부모님 댁으로 구속영장 통보가 가 버렸다. 자필 탄원서를 써서 보내시느라 팩스 보낼 줄도 모르는 분들이 집이랑 동사무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고생하셨다고 들었다.

- 광고탑에서는 일상을 어떻게 보냈나.

장연의 : 내부에 가로 1.5미터, 세로 10미터 규모의 공간이 있다. 3층으로 나뉘어 있다. 3층은 잠자리와 식사장소, 2층은 세면장, 1층은 화장실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썼다. 일어나면 운동하고, 페이스북 하고, 밤에는 야구중계 동영상을 보곤 했다. 한 번은 중학교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함께 고공농성 응원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응원편지를 보내 줬다. 정말 감동이었다.

강세웅 : 난 막막하기만 한데 장연의 동지는 혼자서 착착 공간을 만들었다. 속으로 '이 사람은 많이 올라와 봤나' 생각했다. 농성 첫날 고공농성 선배들인 스타케미칼·쌍용자동차 동지들이 전화로 '운동하고, 자기 전에 발을 꼭 씻고 자야 감기에 안 걸린다'고 알려 줬다. 틈날 때마다 운동을 했고, 물티슈로 발을 닦고 잤다. 낮에는 웬만하면 광고탑 위에 나와 있었다. 여기 사람이 올라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 힘든 일은 없었나.

장연의 : 대학에서 튜바를 전공했다. 가장 낮은 음역대의 악기다. 튀는 악기가 아닌데도 오케스트라에서 빠지면 확 티가 난다. 그렇게 뒤에서 노조의 바람막이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농성을 시작했다. 광고탑 생활 자체는 견딜 만했다. 다만 처음에는 추위 때문에, 거기 적응될 쯤에는 두통 때문에, 나중에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힘들었다.

강세웅 : 60일을 넘길 때쯤에 고비가 찾아왔다. 교섭은 진전되지 않고, 조합원들은 힘들어하고…. 마음의 리듬이 깨지니까 설사도 오고 몸도 힘들어졌다. 그럴 때는 차광호 동지랑 한두 시간씩 통화를 하면서 위안을 받았다.

"재하도급 없앤 건 성과지만 이행보장 장치 없어 아쉽다"

- 어렵게 임단협을 체결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장연의 : 전국에 흩어진 다단계 하도급 비정규직들이 뭉쳐 1차 목표인 재하도급을 없앴다는 건 정말 큰 성과다. 다만 임단협 조항이 실제 어떻게 현실에 적용될지가 관건이다.

강세웅 : 개인적으로는 임단협 내용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더 큰 문제는 그 임단협도 안 지키려고 하는 서비스센터(협력업체)들이 많다는 점이다. AS기사의 경우 임금체계가 바뀌면서 기존보다 임금이 줄어드는 경우에 대비해 보전금을 두기로 했는데, 센터들이 이걸 제대로 계산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과거 근로시간을 제대로 산정하지 않던 관행을 고치지 않는 곳도 있다. 합의 이행을 강제할 법·제도적 장치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장연의 : 고공농성을 마친 뒤에는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된다. 100%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앞으로 하나씩 이뤄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나무를 심고 손자가 결실을 보듯 말이다. 당장 우리에게 올 이익은 크지 않아도 기반을 계속 다져 나가면 나중에 큰 수확이 있을 것이다.

강세웅 : 장연의 동지 말대로 앞으로가 중요하다. 노조를 만든 것은 회사를 상대로 긴 싸움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투쟁도 그 과정일 뿐이다. 물론 당장의 실리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설득해 나가야 할 것 같다.
▲ 한 시민의 제안으로 고공농성 기간 동안 릴레이 응원 인증샷 찍기 캠페인이 sns를 통해 진행됐다. 강세웅씨와 장연의씨는 병실에 응원 인증샷 앨범과 중학생들이 직접 써보낸 응원 편지를 두고 꺼내보곤 한다. 윤성희 기자

고공농성으로 얻은 키워드는 '관심·실천·연대'

-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장연의 : 어떤 분이 페이스북에 '나는 용역이다. 너희는 노조라도 있지'라는 댓글을 남겼다. 나도 불과 1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막상 일어서면 옆에서 도와주고 스스로도 몰랐던 힘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분들도 용기 있게 나섰으면 좋겠다.

- 현장에 복귀한 뒤 하고 싶은 일은 뭔가.

장연의 : 일하는 거, 그리고 야구장 가는 거다. 야구경기는 저녁 6시30분에 하는데 내 일은 맨날 밤 9시 넘어 끝났다. 그 뒤에도 고객전화 받느라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열심히 일하고, 일 끝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다.

강세웅 : 조합원들과 당구를 치고 싶다. 그리고 사는 동네에 '민중의 집'을 만들고 싶다. 고공농성을 하면서 정한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 관심·실천·연대다. 세 가지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우리가 바라는 좋은 세상이 빨리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과 진보적인 가치를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세상이 조금이나마 바뀌지 않겠나.

윤성희  miyu@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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