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야간자율학습(야자)에 ‘자율’은 없었다. 야자에 참여하는 것은 강제였고, 국영수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땡땡이를 치는 것은 스릴 있었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소설책이나 만화책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은밀히 즐겨야 하는 금서였다. 학생들은 자율학습이라는 이름 아래 밤늦도록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강제로 학습노동을 해야 했다.

타이어 휠을 생산하는 인천 A회사 취업규칙에 따르면 휴게시간은 주간근무 시에는 ‘정오에서 오후 1시까지’와 ‘오후 5시에서 오후 6시까지’이고, 야간근무 시에는 ‘자정에서 오전 1시’와 ‘오전 5시에서 오전 5시30분까지’로 특정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장된 휴게시간은 점심·저녁·야간 식사시간 30분이 전부였다. 노동자들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게시간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회사는 휴게시간에도 계속 일을 시켰다. 연장근로수당은 지급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하자 회사는 느닷없이 “식사시간 이외의 휴게시간은 생산공정 및 조별 상황에 맞게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15분 또는 20분씩 쉬도록 보장하는 자율선택적 휴게시간제를 실시해 왔다”고 주장했다. 자율선택적 휴게시간제라니…. 노동자들은 듣도 보도 못한 별난 휴게시간제에 분노했다.

24시간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 라인에서 사용자의 관리·통제 없이 노동자들이 생산공정과 조별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휴게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사 주장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알려진 자율선택적 휴게시간제하에서 노동자들은 전체 작업공정을 24시간 동일한 속도로 유지하는 관리자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라인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설령 빠져나와 잠깐 화장실에 가거나 바깥 공기를 한 모금 들이마시더라도 라인에 남아 있는 동료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4인1조에서 자신이 빠지면 다른 조원들의 노동강도는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휴게시간은 라인을 벗어난 사람에게나 라인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근로기준법 제54조는 하루의 연속된 노동으로부터 노동자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휴게시간은 노동자가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원은 휴게시간을 “근로자가 근로시간 도중에 사용자의 지휘·명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또한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시간”으로 정의하면서, 작업시간 도중에 작업에 종사하지 않은 대기시간이나 휴식·수면 등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휴게시간으로서 노동자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이라면 이는 근로시간에 해당한다고 본다.

노동자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돼야 하는 것이 휴게시간이다. 사용자의 휴게시간 보장의무는 휴게시간의 시작과 종료 시각을 사전에 특정해 노동자들이 그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보장하라는 것이지, 노동자들이 근무시간 내에 알아서 자유롭게 쉴 수 있게 보장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용자가 라인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순번과 시간을 정해 주지도 않는데 어떤 노동자가 생산공정과 조별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쉴 수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회사 주장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차를 세워 주진 않겠지만 알아서 차에서 내려서 쉬는 건 허용하겠다고 한 꼴이다. 자율선택적 휴게시간제라는 것 자체가 사용자 업무지시권과 노동자 자율선택권 사이의 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율선택이라는 말 때문에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자율선택적 휴게시간제는 회사가 주야 맞교대 시절 노동부로부터 휴게시간 미보장, 주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에 대해 시정명령을 받고 3조2교대제로 전환하면서도 취업규칙에 명시된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회사가 내세운 궁여지책이었다. 궁여지책만 있었지 열악한 노동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자율도 없었고 휴게시간도 없었다. 교실에 있었던 누구나 야간자율학습이 감시와 통제로 점철된 타율학습인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라인을 타고 있는 노동자들도 자율선택적 휴게시간이 자신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사용자의 시간임을 몸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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