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의 재구성은 쉽지 않았다. 재구성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왜 망했는지를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 (…) 새로 시작하자. 과거의 틀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자. 자유로운 개인과 공동체의 연대가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향해. 그게 내가 파산에서 벗어난 방법이었다.”

처절했던 파산의 기억을 이토록 덤덤히 써내려간 사람은 누굴까. 12년간 잘나가던 벤처기업 아리수미디어가 2006년 쫄딱 망했다. 도대체 촉망받던 그 회사는 왜 망했을까, 파산 과정은 어땠는가, 그리고 어떻게 파산에서 벗어났는가.

아리수미디어 파산의 주인공이자 사장이었던 이건범씨가 <파산>(사진·피어나·값 1만4천원)을 내놨다. 그는 책에서 우리가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재정적 파산은 물론이고 인생의 파산 앞에서도 놓지 않을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는 왜 망했을까

아리수미디어는 94년부터 2006년까지 놀이학습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유통하던 괜찮은 벤처기업이었다. 이씨는 민주화운동으로 2년4개월 넘게 옥살이를 하고 93년 출소한 뒤 친구 회사에 잠깐 다니다 창업을 했다. 크고 작은 위기를 넘기며 매출 100억원에 직원 120명이 다니는 회사로 키웠다. 그는 자본의 논리보다는 자유와 우애가 넘치는 공동체로서의 회사를 꿈꿨다고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도 견뎌 냈던 그의 꿈은 벤처붐 속에서 추락한다.

“외환위기 이후 묻지마 벤처 투자 불길이 일었다. 그 빠른 변화의 속도에 조바심이 난 탓인지 벤처 열풍 막바지인 2001년부터 나도 그 급류에 황급히 올라탔다.”

인터넷 시대에 발맞추려 무리하게 투자를 끌어들여 온라인 신제품을 개발하고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회사는 버티지 못했다. 그는 억지로 사업을 떠안고 파멸하기보다 책임 있게 파산하는 길을 택했다. 거래처 대금을 갚고 체불임금부터 해결했다. 그에겐 남은 게 없었다. 개인파산을 신청한 뒤 신용불량자가 됐다.

나의 길을 가라

이씨는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했다. “나는 왜 망했을까.”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기업을 꿈꿨던 그가 결과적으로 '성공을 이루면 된다'는 자본의 논리에 흔들렸다. 이씨는 “성과 만능주의의 광기에 휘말린 나의 혼란을 지목한다”며 “사회 개혁가가 될 건지 자본가로 성공할 건지 오락가락하던 나의 혼란 말이다”고 술회했다. 자신의 꿈을 믿지 못하고 자본의 논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파괴하고 그 힘의 먹잇감이 됐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그런 그가 2010년 출판기획자로서 <좌우파사전>을 펴내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현재는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이씨가 파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실패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왜 바닥까지 내려갔는지 보기를 주저하지 말고, 새로 시작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신용불량자인 그는 가족과 주변에 자신의 파산을 숨기지 않았고, 그들의 지지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나의 길, 당신의 길, 자기의 길을 가라. 자기 땀이 쌓은 힘의 크기와 세기를 믿어라. 비록 그 힘이 거대하지는 않을지라도 멋지다는 점을 의심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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