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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센터 제품 수리 노동자의 루게릭 산재 인정박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 박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이 글은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제품수리 노동자 이현종씨가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루게릭)으로 산재를 인정받기까지의 이야기다.

이씨는 지난 20여년간 환기장치도 없는 비좁은 작업장에서 하루 14시간씩 전자제품을 수리하기 위해 납땜작업을 하고 시너 등 유기용제를 사용하다 루게릭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병을 얻었다. 지난해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지만, 20여년이 지나는 사이 작업환경 대부분이 바뀌고 과거 유연납이나 발암성 유기용제를 사용했던 사실이 은폐되면서 업무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려웠다.

공단 대전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심리가 열리던 날 이씨의 부인 서인숙씨는 손수 써 온 글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루게릭 진단을 받고 4개월 만에 인공호흡기를 차고 잘 나오지 않는 말을 힘겹게 했던 마지막 말이 ‘나 버리지 마’였습니다. 서로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불쌍하고 가엾어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3년이 흐르고 있지만 좋아지지 않고 점점 나빠져서 이제는 눈꺼풀도 제대로 움직이질 않아 의사소통도 어려운 지경입니다. 미칠 수도 죽을 수도 없는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강도라도 들어와서 우리 다섯 식구 조용히 보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0년을 다닌 직장에선 아무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천장만 힘없이 바라보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남편이 너무 불쌍하고 억울합니다.

폐가 많이 줄었다고 의사선생님이 걱정하시며 호흡이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모른다며 심폐소생을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저희는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남편의 또 저희의 마지막 희망인 산재가 꼭 인정돼 남편의 근심인 저와 3남매 걱정을 덜어주고 싶습니다.

루게릭병은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일한 곳의 환경 때문에 온 게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신중하게 생각해 주시고 잘 검토해 주셔서 한 가장의 평생을 평가해 주시고 억울함이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남편을 끝까지 버리지 않겠다 약속했습니다. 약속을 지키며 남편을 외롭지 않게 돌봐주고 싶습니다.”(대전질판위에서 서인숙씨가 읽은 글 중에서)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서씨의 글이 하늘을 움직인 것일까. 지난 23일 질판위는 삼성전자서비스 동대전센터에서 근무해 온 이현종씨에게 발병한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이 업무상질병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질판위는 과거 작업장에서 납이나 유기용제, 전자기장의 노출정도나 체내 축적량 등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과거 전자제품에 유연납 사용량이 많았다는 사실 △작업환경이 바뀐 시점 이후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의 특수건강검진 결과상에서도 체내 납 축적 농도가 4.6㎍/㎗에서 6.5㎍/㎗ 정도로 일반인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과거 신청인의 작업과정에서 적지 않은 양의 납에 노출됐을 것을 합리적으로 추단할 수 있다는 사정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이 인구 대비 발병률이 낮은 희귀질환으로 많은 사례가 축적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유기용제와 전자기장에 노출된 근로자에게 조금 더 높은 발병률이 나타나고 해당 유해인자와 상병과의 관련성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점을 보면 작업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은 뇌와 척수 운동신경 퇴행성 질환으로 통상 40대 이후 나이가 많아질수록 발병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신청인의 경우 만 38세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발병했으나 이 사건 질병의 위험인자인 가족력이나 흡연력이 없다는 사실 등을 바탕으로 신청 상병은 신청인의 업무환경과 상당한 인과관계를 갖는 질병으로 판단된다고 봤다.

질판위는 발생기전이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희귀질환이라도 다양한 지표로 상당인과관계를 추단했다. 특히 작업환경이 변경된 경우에도 과거 동종산업의 특성과 동종 사업장 작업조건 등 업무관련성을 판단할 다양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공단은 그동안 다양한 화학물질과 중금속 등에 노출되는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성 질병 문제를 소극적으로 다뤄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법원에서 직업성 질병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번 질판위 판정 역시 전자제품 제조업뿐만 아니라 전자제품 수리서비스업에서 발생한 직업성 질병과 업무관련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원인 모를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주영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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