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총파업의 날은 지나갔다. 4월24일이 지나가자 뜨거웠던 봄, 광장과 거리를 뒤덮었던 파업집회의 대오는 사업장으로 흩어지고 파업투쟁 구호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노동시장 구조개혁 저지 등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총파업은 하루로 일단 마무리됐다. 권력의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의지는 흩어진 것이 아니니 언제든지 다시 대오를 이루고 투쟁의 구호를 외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이 나라 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 사용자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노동자권리를 위한 총파업과 사업장투쟁으로 노동자들은 2015년을 기록하고 있다. 노동자권리를 저하시키려는 권력의 노동개혁에 맞서는 한 해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이 있다.

정년연장을 두고 난리다.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하도록 하는 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 사업장마다 시끄럽다. 27일 정년연장에 관한 교육을 하고 온 KBS도 사용자가 임금피크제를 도입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정년연장이 문제라고 했다. KBS만이겠는가. 300명 이상 사업장은 내년, 그 미만 사업장이라도 2017년부터 법이 시행되니 아직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하지 않은 사업장은 어디라도 마찬가지다. 이번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업장이라도 문제일 수밖에 없다. 사실 정년연장에 합의한 사업장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종전과 동일한 정규직 지위에서 정년을 연장하지 않은 사업장이라면 정년연장법의 시행을 두고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정년연장법을 읽어 보자. 도대체 제대로 이 법 규정을 제대로 읽어 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무엇이 노동자권리인지 이 정년연장법, 즉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을 읽어 보자. 제 권리를 바로 알아야 그것을 지켜 낼 수도 있다.

2. 2013년 5월22일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됐다. 정년에 관한 제19조를 변경하고, 제19조의2를 추가하는 내용으로 개정했다. 개정 전 법률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에는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제19조). 아직 개정 법률이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이 개정 전 법률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법률이다. 이처럼 개정 전 법률에서는 사업주가 근로자의 정년을 정하는 경우에는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정하고 있다. 법이 사용자에게 노력하도록 정하고 있어 60세 이상 정년보장을 강제하지 못했다. 법은 분명히 사용자에게 정년을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 나라 사용자의 거의 대부분은 이 법을 준수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이 나라는 정년연장이 문제인 것이다. 개정 전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사용자가 노력의무를 이행했다면 오늘 이 나라는 정년연장을 둘러싸고 노사 간에 이토록 문제는 아닐 수 있었다. 이처럼 정년연장 문제는 사실 사용자의 법 위반에 기인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정 전 법률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 대부분은 법이 정한 바에 따라 “그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정년에 관한 개정 전 법률은 개정됐다. 개정 법률은 먼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제19조제1항). 시시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정해야 한다’고 법답게 규정하고 있다. 개정 전 법률 규정을 위반하더라도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이제는 다르다. 사업장에서 이에 반하는 정년제도의 운용은 위법이고 무효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반해서 60세 미만 정년을 두고 있는 경우라면 그 정년이 무효가 되니 정년을 두고 있지 않은 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사업장의 근로자는 정년이라는 연령 상한, 근로계약의 종기를 정하지 않은 그야말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랬다면 정년이 지났어도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될 수 없는 근로자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개정 법률은 이렇게 덧붙였다. “사업주가 제1항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제19조제2항). 노동자와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조합이 환호하는 규정이다. 60세 미만으로 정년을 둔 경우 60세 정년으로 간주하는 것이라며 정년 60세가 보장되게 됐다고 노동자의 정년보장을 위한 규정이라며 법 개정을 지지하게 했던 규정이다. 이 법 규정에 따라 이제 300명 이상 사업장은 내년부터, 그 미만 사업장이라도 내후년부터는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한 경우에는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본다”. 지금 58세 정년 사업장이라면 300명 이상 사업장이라면 2016년 1월1일부터 60세 정년이다. 단체협약·취업규칙·근로계약 등에서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하고 있어도 내년부터 정년은 60세다. 개정 법률은 정년연장을 위해 노사는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지만 내년(또는 내후년)부터 60세 미만으로 정하고 있는 경우 정년은 60세다. “제19조제1항에 따라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사업주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말한다)은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제19조의2제1항). 다시 한 번 말하지만 60세 정년은 60세 미만으로 정년을 정한 경우에 개정 법률 제19조제2항에서 정한 바에 따라 법률상 당연히 보장된다. 위 제19조의2제1항에서 정한 바와 같이 노사 간에 임금체계 개편 등 조치를 해야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60세 미만으로 정년을 정하고 있는 사업장에서 60세 정년은 당연한 노동자권리로 보장된 것이다. 따라서 60세 정년 보장을 위해서 임금피크제 등 임금권리를 저하시키는 임금체계 개편을 한다면 그는 노동자권리를 모르는 바보이거나 사용자나 사용자편에 선 자일 수밖에 없다. 만약 사용자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해 주겠다며 위 제19조의2제1항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자고 노동조합에 요구해 온다면 어떻게 할까. 법이 정하고 있으니 그 협의에 응하면 된다. 협의에 응해서 65세·70세 등으로 정년을 연장해 주겠다고 하는지, 임금권리를 향상시키는 임금체계 개편을 하겠다고 하는지 살펴보겠다고 하면 된다. 법이 보장한 60세 정년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라면 그것을 위한 필요한 조치는 할 필요 없다고 사용자에게 말해 주면 된다. 임금체계 개편 등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이에 대한 사용자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았다고 60세 정년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법은 이 세상에 없다. 지금 이 나라에서 그런 째째한 법은 없다.

3. 정년제도는 고용보장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정년제도는 퇴출하는 제도다. 연령을 이유로 사업장에서 추방시키는 제도다. 따라서 정년을 60세로 보장해 준다고 해서 환호할 일이 아니다. 노동자가 아니라, 일정한 연령에 도달했다고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정년제도를 추방해야 한다. 법은 근로계약의 기간이나 사용기간으로 근로자의 신분을 기간제 또는 계약직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근로자로 정하고 있다. 이런 노동법에서 정년제도는 낯설다. 노동자권리로 보자면 법 위반으로 무효가 돼야 할 제도다. 판례는 그 동안 정년제도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판시해 왔다(대법원 1978.9.12 선고 78다1046 판결 등). 이런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제도일 뿐이다. 외국사례를 통해서 보더라도 그렇다. 미국은 1978년 정년법(Mandatory Retirement Act)에서 65세에서 70세로 상향조정했다가 1986년 법 개정시 이를 폐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정년제를 없앴다. 70세가 넘어도 정년퇴직하는 법은 없다. 과거에는 65세만 되도 근력이나 지력이 딸려서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제공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그런 노동자가 사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영국도 2010년 평등법(Equality Act)에 의해서 2011년부터 종전의 65세 정년제를 폐지해서 일정 연령을 도달했다고 해서 퇴직시키는 것은 불공정 해고 또는 연령차별에 해당하게 됐다. 70세 정년이라고 퇴직시킨다면 영국에서는 부당한 해고로 무효가 되는 것이다. 독일은 단체협약에서 65세 정년을 규정하고 있었는데 1992년 연금개혁법 시행 이후 연방노동법원이 단체협약에 의한 65세 일률 정년제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연금 수급개시 연령이 정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으로 양보해 줄 테니 60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해 달라고 노동자가 사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70세로 정년을 연장해 줄 테니 정년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오히려 사용자가, 권력이 사정할 일이다. 물론 노동법 타령하는 내가 볼 때는 그래도 무효라고 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도 지금 이 나라에서는 엉뚱하다. 60세 정년보장을 내세워 고용노동부 등 권력은 임금피크제·직무성과급제 등 임금체계 개편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합의를 종용하더니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발표하겠다고 하고 있다. 정년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정년이 연장되는 법을 두고서 임금피크제 등으로 거래하려고 하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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