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전국교직원노조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결했다. 원 전 원장은 부서장회의에서 전교조를 "종북좌파"라고 칭하고 "우리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중앙지법(판사 조병대)은 전교조가 국가와 원 전 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가 청구한 3천만원 중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정무직회의'와 '모닝브리핑'을 통해 그날 주요 현안을 확인하고 그에 관한 지시나 강조사항을 전달했다.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이 했던 발언은 요약돼 국정원 내부전산망 공지사항에 '원장님 지시 강조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됐다.

‘원장님 말씀’에는 “아직도 전교조 등 종북좌파 단체들이 시민단체·종교단체 등의 허울 뒤에 숨어 활발히 움직인다”, “국내 종북좌파가 앞으로 더 이상 우리 땅에 발붙이고 살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종북세력 척결과 관련,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지부장들이 유관기관장에 직접 업무를 협조하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법원은 "원 전 원장이 구체적인 확인이나 검증 없이 부서장회의 또는 원장님 말씀을 통해 원고를 종북세력 또는 종북좌파 단체라고 지칭하면서 그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계속 반복적으로 지시하고 그 활동 결과를 보고받은 것은 '전교조 내에 북한을 추종하면서 한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종북세력이 있고 그러한 세력들이 원고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어 "검증 없이 국가적 사회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인식돼 사회 평가가 저하될 뿐 아니라 국가보안법에 따른 형사적 처벌 위험성까지 지게 되는 점을 고려할 때 개인이나 단체에 주어질 사회적인 평가가 객관적으로 침해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원은 단결권과 노조활동 침해 주장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을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을 대리한 강영구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법원은 원 전 원장 개인의 불법행위에 머물지 않고 국가의 관리·감독 책임까지 인정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며 “분단체제에서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종북세력으로 지목돼 불법단체처럼 보이게 했던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전교조는 “사필귀정”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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