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 8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있는 한국기술교육대 고용노동연수원 강의실. 부산정보관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진로캠프’가 한창이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강점을 탐구하는 시간. 탁상에 걸터앉은 강사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도했다. 학생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고 질문하거나 답변을 했다. 웃음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벽면에는 전날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대자보 근로계약서가 붙어 있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학교에 강사들을 파견 보내 교육했습니다. 올해부터는 학교가 원하면 숙박하면서 캠프식 교육을 병행하고 있어요. 교육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인데, 학생들의 반응과 평가가 아주 좋습니다.”

정태면(55·사진) 고용노동연수원장의 말이다. 연수원은 1991년부터 중고생을 대상으로 노동가치관과 직업관·노동기본권·노동관계법을 교육해 왔다. 교육의 질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1년에 2만5천~3만명을 교육했지만, 한 번 교육에 수 백명을 모아 놓고 고작 2~3시간을 강의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 교육부 위탁을 받은 2012년부터 매년 10만여명의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사이버 교육을 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것이다. 2011년 12월 기아자동차에서 현장실습생이 장시간 노동 끝에 쓰러진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고용노동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지난해부터 6억~7억원 규모로 청소년 노동교육 예산이 연수원에 배정됐다.

연수원은 지난해에는 교육용 콘텐츠·자료 개발에 집중 투자했고, 올해부터는 캠프식 교육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학교현장 교육도 강사 한 명을 보내 한 학년 전체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각 반마다 강사를 한 명씩 파견해 교육의 질을 높였다. 올해만 5만여명의 청소년들을 교육시킬 방침이다. 2017년까지 중장기 계획도 세웠다.

정태면 원장에게서 청소년 고용노동교육 사업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었다.

- 일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노동 관련 교육을 시킨다. 학교교육과 비교해 연수원 교육의 강점은 뭔가.

“최근 교육부가 주도해 6천명의 직업상담교사를 양성하면서 일선학교에서도 고용노동교육의 체계가 어느 정도 갖춰졌다.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교사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교원들이 직업세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데다, 학생들의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학교교육은 학습능력 평가를 전제로 한다. 민주시민성을 키운다는 교육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진로를 탐색하고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구조다.

연수원이 주관하는 교육은 전문성이 담보된다. 전문성이 담보된 분들을 교사로 투입한다. 일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세우고 진로탐색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는 크다.”

- 일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라면.

“학생들이 가진 편견이 하나 있다. 노동자는 근로자에 비해 직업의 위신도가 낮다는 생각이다. 노동자와 근로자는 같은 뜻인데도 말이다. 그런 편견은 진로를 선택할 때 악영향을 미친다. 자식세대 성공을 바라는 부모세대의 높은 교육열 때문이라고 본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 노동시장 미스매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조건 격차가 큰 원인이지만, 이런 편견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연수원 교육은 이런 인식의 한계를 깨면서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연수원이 지난해 개발한 근로기준법 강사용 교재에는 노동자와 근로자를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연수원은 교재에서 “학생들 중 노동자는 육체근로자(혹은 블루칼라)로, 근로자는 정신근로자(혹은 화이트칼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임금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근로자라고도 한다”고 정의했다.

- 노동의 가치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왜곡된 가치관이 있다. 자신들은 노동자가 되지 않고 (연예인과 같은) 스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0억원 번다면 1년 동안 감옥 가도 좋다는 청소년들도 있다. 연수원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통해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 자체가 행복하다는 인식을 주입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힘든 일을 하는 청소부나 우편집배원들이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일이 사회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을 가질 때만이 일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 노동기본권과 노사관계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이는데.

“노동관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서로 존중해야 하고, 기업이 있어야 본인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깔아 놓는다. 캠프 교육에서는 노사관계도 그대로 설명한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갈등도 있을 수 있고, 그 갈등이 파국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실제 파업사례도 풍부하게 얘기한다. 노동위원회 조정제도라든지 단체협상 제도도 교육한다.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제도는 물론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피하지 않고 설명하고, 특수고용직이 되면 근로자로서 완전히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도 솔직하게 보여 준다.”

- 청소년 노동교육의 질을 높이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2013년 국정감사 영향으로 다행히 적지 않은 예산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사업을 확대하고 질을 높이려다 보니 예산과 인력의 한계가 여전하다. 연수원에서는 최대 300명이 숙박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이번주에만 1천명의 숙박교육이 예정돼 있다. 다른 공공기관이나 민간기관 시설을 빌려 사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만 6천여개다. 지금 인력으로는 10%도 교육을 못 시킨다. 여타 민간기관이나 사회시설에서도 청소년 노동교육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연수원 교육이 좀 더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청소년 노동교육과 관련해 2017년까지 장기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숙박을 하는 집체교육은 특성화고 학생이나 일반고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 위주로 진행 중이다. 중학생과 대학생을 위한 집체교육을 늘리고 그들에게 맞는 교육콘텐츠 개발을 확대할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청소년 교육과 관련해 내용적인 면에서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일선 학교나 사회기관 강사들에게 보다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취업진로와 관련한 교수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연수원은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학교 밖 청소년들도 교육기회를 가지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 올해부터는 연수원 인근 성남시 사회시설과 청소년 교육, 강사교육을 협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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