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가 6개월간 진행한 노사정 협상이 끝내 결렬됐다. 결렬을 선언한 쪽은 한국노총이다. 한국노총은 “정부와 사용자 입장이 바뀌지 않아 의미 있는 성과를 얻기 어려웠다”고 했다. 한국경총도 협상 중간에 ‘노사정 대타협 실패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준비했던 것을 보면 논의 결렬은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노사정 협상 실패 원인은 무엇일까. 노사정 대타협의 전제 조건은 어떤 게 있을까.

근로시간·통상임금 문제로 소타협 추진하자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

복잡한 사안이 많은데도 논의시간이 너무 촉박했다는 점이 실패의 한 원인이다. 노사정 대타협은 큰 사회적 위기나 경제 위기일 때 성사되는데 지금은 서로 그런 절박감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측의 전략부재도 큰 원인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문제는 정부의 중요한 협상카드일 수 있었다. 그런데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해 주겠다고 하면서 카드를 써 버렸다. 정부가 협상을 총괄 지휘하는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실수만 남발했다.

그렇다고 이번 노사정 협상을 실패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동안 전혀 합의가 안 될 것 같았던 내용들이 합의에 근접하기도 했다. 통상임금·근로시간·청년실업 문제에서 진일보했다고 본다. 절반의 성공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노사정이 지속적인 대화를 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일부 근접한 안건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대규모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통상임금·근로시간 등 안건 하나하나를 테이블로 가져가서 연속적인 소타협을 시도해야 한다. 노동계가 강하게 반대하는 일반해고 완화와 취업규칙 변경 문제는 장기과제로 남겨 두자.

가장 큰 우려는 논의가 국회로 넘어가는 것이다. 여야가 정쟁을 벌이다 노사 누구도 원치 않은 해법을 합의해 버리는 수가 있다. 그런 경험도 있지 않나. 노사정이 소타협을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의제 설정 원점으로 돌아가야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의제 설정 자체가 사용자 중심적이었다. 한국노총이 타협하고 합의할 내용 자체가 없었다. 의제도 편향됐지만 논의구조 역시 사실상 1대 3의 일방적인 구조로 경영계에 치우쳐 있었다. 협상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만약 한국노총이 타협을 했다면 내부의 조직적인 분란뿐 아니라 전체 노동계에서 많은 지탄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는 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사안이다. 확대를 하는 게 맞다. 일반화시키느냐,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의 문제만 남아 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사안은 노동계 요구라고도 할 수 없고, 대법원 판결에 상응해 정부가 조치를 취하면 된다. 이를 정부와 사용자측이 사실상 지연시키려고 했다. 해야 할 일을 미룬 것이다.

근로시간단축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 공약인데도, 한국노총의 최소한의 요구를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추후 검토’라는 식으로 뒤로 미뤘다. 반면 정부와 사용자측은 임금체계 개편·파견 확대·일반해고 요건 완화 등 새로운 개악의 요소는 혈안이 돼 추진했다.

정리하면 5개 의제 중 당연히 했어야 할 2개는 지연시키고,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후퇴시키는 3개 의제는 밀어붙였다. 의제 자체만 놓고 봐도 불균형하다. 노사정위가 한국노총이 버틴다고 했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 불가능 

박태주
서울특별시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

노사정 대타협의 결렬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성사되는 쪽이 재앙인 상황이었다. 안타깝지만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본다. 참여정부 때 비정규직법 입법을 밀어붙이며 사실상 노사정 대화를 포기했던 장본인이 이제 와서 노사정 대화를 주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처럼 정부 주도로 사회적 대화가 이뤄지는 나라에서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정략적으로 특정 이해관계에 편중돼 노동계를 들러리 세우겠다는 자세라면 사회적 대화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자신이 설정한 스케줄에 따라 노동계를 들러리 세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나. 사실상 대화의 필요성을 정부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과 철학·가치가 바뀌지 않는 한 사회적 대화는 무의미하다. 억지로 대화를 진행한들 유효한 결과에 이르지도 못할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이 무엇인가. 바로 사회 양극화다. 그렇다면 정부는 사회적 약자 편에 다가가 ‘사회적 등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물리적 등거리’가 아니다. 정부가 노동시장 약자들에게 가까이 갈 때 비로소 가치중립이 성립한다. 이런 자세를 갖추지 못한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대화를 해 보겠다고 협상장에 들어간 노동계도 답답해 보인다.

노사정 취약한 대표성 해결해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민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진행되면서 청년실업 문제 등에 대해 희망적인 메시지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합의에 실패하면서 큰 실망감을 안겼다. 앞으로 노동시장 정책을 운영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근로시간단축이나 통상임금처럼 노사정 의견이 접근된 부분에 대해서는 국회가 받아 논의를 이어 가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경우 의견이 접근된 부분이 없지만 추후에라도 국회가 논의할 수 있도록 노사정이 접점을 찾아야 한다.

노사정 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노사정 3주체를 과연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정부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고 풍부한 논의를 진행해야 했는데, 급조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왕좌왕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미리 협상카드로 내미는 미숙함도 보였다.

노동계의 리더십 부재는 가슴 아픈 부분이다. 내부 분파 때문에 어떤 안이 나와도 반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겠나. 노동계는 앞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핵심 대상은 취약계층이다. 그런데 이번 협상 주체들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지와 관련해 한계성을 보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합의 실패는 반복될 것이다.

정부 틀에 맞춘 사회적 대화는 실패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
(사회학)

그동안 우리나라 사회적(노사정) 대화를 살펴보면 모두 정부의 필요성에 의해, 정부 주도로 진행됐다. 노사가 나서 공동으로 뭘 해 보자고 시작된 게 아니라 정부가 판을 깔고 드라이브를 걸면서 대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사전에 사회적 대화의 방향이나 정책까지 다 제시하고 그 틀에 노사를 맞추려 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구조개선 협상에서도 정부는 지난해 12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사전에 발표했다. 그때부터 일정한 방향으로 논의가 거듭됐다.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제도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자신이 내놓은 정책방향으로 협상을 몰고 갔다. 한국노총이 협상 결렬을 선언했지만 사실상 정부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노사가 주도성을 갖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사회적 대화가 이뤄져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정부는 중재자로서 노사 이견을 조정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럴 때 사회적 대화가 일보 진전할 수 있다. 정부가 목표를 정하고 이미 만들어 놓은 답으로 노사를 몰고 가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 구조개선 협상이 합의 실패로 끝났지만 사회적 대화는 이어져야 한다. 노사정위원회가 그간의 문제점과 한계를 평가하고 더 나은 협상 방식과 모델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예를 들어 청년이나 비정규직도 협상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폭을 넓혀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