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장경제와 공정한 경쟁의 룰을 가장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있는 세력들이 스스로 시장경제의 주창자로 등장하여, 자본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아래 앞뒤도 맞지 않는 흑백논리를 들이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전경련이대변자인 자유기업원에서 발표한 ‘시장경제와 그 적들’은 바로 노동조합, 시민단체 및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현 정부를 좌경으로 몰고 있다.

그들은 재벌의 세습을 차단하고 합리적 경영을 요구한 시민단체의 요구, 사용자의 자의적인 해고조치를 막으려는 노동조합 활동을 모두 시장경제를위반한 좌경운동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오너 개인의 욕심에 의해 외화의 과다차입과 중복투자를 반복한 재벌 계열사가 국가경제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일이 바로 엊그제였으며, 빈사상태에 빠진 기업을 살리기 위해 수 조원의 국민들의 피 같은 돈이 투입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재벌기업의 반사회적 행태를 견제하려는 정부와 시민단체의 활동을 ‘빨갱이’로 모는 저의는 어디에 있는가?

그동안 한국의 일부 재벌들이 벌인 일들, 즉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모금하여 정치가를 매수하고, 기업의 의사결정을 오너와 그의 가족들이 독단적으로 장악하며, 중소기업 고유업종에 들어가 시장을 독점하고, 주식시장에‘작전’을 감행하여 주가를 조작하여 소액투자자를 몰락시키고, 회계장부를 조작하고, 노조결성을 막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하는 행동은 천민적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시장경제와는 도저히 화해할수 없는 반사회적·반민주적·반시장적 행태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노조와시민의 목소리가 과거보다 커져서 기업들이 그러한 이윤추구 활동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자, 노조와 시민단체를 모두 좌경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의 해고권을 극대화하여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고, 사회적약자에 대한 모든 복지나 보호장치를 없애 그들의 재기가능성을 차단하고, 구매력 없는 빈자들을 무시하며 오직 부자들에게 필요한 상품만 공급하고, 환경관련 규제를 모두 풀어서 기업이 산천초목을 망가뜨리는 골프장 건설을감행하건 말건 내버려두고, 공익성을 갖는 교육사업에 기업의 논리를 적용하여 재단이사장이 교수들을 종 부리듯이 하고, 오너에게 무한대의 권력을주어서 그들이 가망 없는 업종에 돈을 쏟아붓던 말던 내버려두게 되면, 이제 민주주의와 형평성은 물론이고 시장조차 더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고 군사독재보다 더 무서운 백색 독재가 수립될 것이다.

금융 황제 소로스조차 이러한 이윤만능주의 혹은 시장근본주의는 전체주의보다 더 무서운 적이라고 강조했다. 20세기 자본주의 역사는 곧 자본주의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독점자본을 시장과 민주주의의 힘으로 규제하고 소유권의 무차별적인 확대를 제한해온 역사였다. 즉 ‘시장’과 자본주의는 동의어가 아니며, 자본주의를 살려준 것이 ‘자본의 전횡에 대한 규제’였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 브로델은 소유권과 시장은 동일하지 않으며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의 적’이라고까지 말했다. 소유권 만능주의 혹은 과도한 자본 ’자유’의 논리는 시장과 ’대중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있으며, 나치즘의 등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민주적 자본주의를 전체주의로변질시킬 위험성이 있다.

오늘의 한국 ‘시장경제’ 주창자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얼마나 시장원칙을 위배하였는지 고백하지 않고 있음은 물론, 불행하게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는 폭력이나 자본 독재, 매카시즘을‘시장’ 혹은 자유라고 말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궤변이 6·25 당시나 지금이나 엄청난 힘을 갖고서 군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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