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오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린 3·14 쌍용차 희망행동 참가자들이 굴뚝에서 농성중인 이창근 쌍용자동차지부 기획실장을 응원하는 글귀를 영사기를 이용해 공장 벽에 비추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쌍용차 해고자와 3·14 쌍용차 희망행동 참가자들이 스마트폰 손전등을 들어 굴뚝농성장을 향해 흔들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 14일 오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은 모처럼 봄날 활기가 넘쳤다. 쌍용차 정문에서 굴뚝이 보이는 곳까지 가는 50미터 남짓한 길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쌍용차 가족대책위원회가 차린 굴뚝김밥과 기륭전자(현 렉스엘이앤지) 노동자들이 부치는 전, 시민·사회단체와 예술가들의 무료 노동상담, 노래공연·그림·사진전·봄맞이 벼룩시장에 이르기까지 40여개의 부스가 길을 따라 설치됐다.

음식을 나눠 먹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인해 흡사 축제날 장터 같았다. 공장 주위에 쳐진 삭막한 철조망에는 "이창근 아저씨 힘내세요", "복직하세요"라고 쓴 어린아이들의 크레파스 글씨와 그림이 여럿 붙었다. 쌍용차 해고자 김수경씨는 "오랜만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여기가 로데오 거리가 됐어. 참 좋다"며 활짝 웃었다.

'약속과 바람' 자물쇠로 걸어

이날 쌍용차 희생자 26명의 명예회복과 해고자 187명의 복직을 응원하는 3·14 쌍용차 희망행동에는 1천여명의 시민·노동자가 함께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지부장 김득중)는 조합원 고공농성을 계기로 6년 만에 사측과의 교섭을 시작했으나 아직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반면 고공농성은 장기화되고 있다. 이달 11일 김정욱 지부 사무국장이 건강 악화와 교섭 진전을 위해 농성을 해제했지만 이창근 지부 정책기획실장은 혼자서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농성은 이날로 92일째를 맞았다. 지부가 '희망행동'이라는 이름으로 각계에 연대를 요청한 배경이다.

전국에서 5대의 '굴뚝버스'를 타고 모인 참가자들은 공장 정문 앞에서 사전대회를 한 뒤 응원편지를 모아 굴뚝에 전달했다. 공장을 둘러싼 철조망 곳곳에 각양각색 자물쇠도 달았다. 2만6천여명이 자물쇠를 걸어 희생자 26명을 기억하고 쌍용차 해고자 문제를 잊지 말자는 약속이다. 쌍용차 문제가 풀리면 자물쇠를 풀고 노사가 함께 세울 분홍도서관에 다시 달자는 미래의 상징이다. 이 실장이 건립을 제안한 분홍도서관은 노사 화합과 시민들이 보여 준 연대에 보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이름과 '원직복직', '함께 살자'는 바람을 적었다. 이창근씨 아들인 주강이와 엄마는 일찌감치 굴뚝이 가장 잘 보이는 쪽 철조망에 하트 모양 자물쇠를 걸어 놓았다. 주강이는 자물쇠를 다는 어른들에게 "같이 붙여 달라"며 녹색 나뭇잎 장식을 나눠 줬다.

쌍용차 해고자 김재석(43·가명)씨도 '원직복직' 자물쇠를 걸었다. 해고 뒤 2년간은 일용직을 전전했고, 지금은 평택항에서 하역업무 관리를 하고 있다. 어느 정도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그의 희망은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김씨는 "복직은 자존심"이라고 했다. 그는 "해고된 뒤 많이 힘들었고 세 명의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가장이 됐지만 난 해고될 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고 그 해고는 부당했다는 것을 꼭 보여 주고 싶다"며 "노사교섭이 잘돼 해고자 문제가 풀리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박성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은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희망버스를 통해 쌍용차와 각별한 인연을 맺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이달부로 복직했다. 박 지회장은 "사회적 연대 없이 노사 간 교섭만으로는 복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공장으로 돌아갔어도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투쟁이 끝난 게 아니다"며 "계속 함께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쌍용차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박 지회장의 어깨를 김정우 전 쌍용차지부장이 감싸안았다. 김 전 지부장은 "동지가 와서 오늘 분위기가 이렇게 좋다"며 "쌍용차 문제도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4학년 이우선(25)씨는 입대를 앞두고 평택을 찾았다.

"2012년 쌍용차 문제를 처음 접하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잘렸다는 데 충격을 받았는데 지금까지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 또한 충격"이라며 "뭐든 힘을 주고 싶어 찾아왔고, 제대할 때는 해고자 분들이 모두 복직돼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각자 굴뚝에 선 사람들 한자리에

참가자들은 사전대회를 마친 뒤 굴뚝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 문화제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증언대회를 열기도 했다. 각각 이날로 37일째, 292일째 고공농성 중인 SK·LG 비정규 노동자들과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그리고 KTX 여승무원들과 동양시멘트 노동자, 쌍용차처럼 '먹튀'에 이어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하이디스 노동자까지 16개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는 쌍용차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8살·10살짜리 두 아들과 함께 하이디스 정상화 촉구 서명을 받으러 다닌 우부기(39)씨는 "공장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라며 "투기자본으로 인해 고통받고 정리해고를 당하는 노동자들을 우리가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날 83번째 생일을 맞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여기 완연한 봄은 하늘이 아니라 김정욱·이창근이 가져다준 것"이라며 "석 달 넘게 굴뚝에 있는 이창근을 내려오게 하고 박근혜와 인도 마힌드라 회장, 쌍용차 사장이 굴뚝 위에 올라가면 쌍용차 문제도, 전국 해고자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창근 실장은 영상통화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 실장은 이어 "여러분은 나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굴뚝에 서 있고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러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한, 반듯하게 승리하기 위한 도구가 돼 끝까지 인내하고 교섭하고 투쟁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상통화가 끝나자 무대에서 굴뚝을 향해 레이저 빛이 쏘아졌다. 어둠 속에 가려졌던 공장 벽과 굴뚝에 '사랑해', '우리 살자'는 빛글자가 환하게 나타났다. 이와 함께 "이창근 힘내자", "사랑해요"라는 사람들의 함성과 휴대폰 불빛이 철조망 위로 넘실댔다. 고공농성 중인 이 실장도 자신이 선 굴뚝 꼭대기 외벽에 손전등을 비춰 보였다. 그곳에는 "또 와요"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김득중 지부장은 "이번 고공농성이 마지막 고공농성이라는 생각으로 싸우고 있고 굴뚝 앞 집회도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란다"며 "노사 교섭으로 이창근 동지가 내려오고 해고자들이 모두 공장으로 돌아가는 봄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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