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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조선업, 꿈틀대는 노사관계
지난 4일과 10일 울산과 거제를 방문했다. 지난달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연)가 출범한 것이 계기였다. 조선업이 불황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 속에서 조선업종노조연대가 어떤 역할을 할지 궁금했다. 시쳇말로 잘나갔던 조선업은 기업별 교섭 관행이 강했고, 노조의 연대활동도 활발하지 않았다. 국내 최대 조선노조인 현대중공업노조는 오랜 기간 연대활동을 하지 않았다. 기업 내 교섭과 활동에 머물렀다. 그러던 조선소 노조들이 사업장 울타리를 벗어나 뭉쳤으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노연에는 현대중공업노조·대우조선노조·삼성중공업노동자협의회 등 대형 조선소 조직과 금속노조 조선분과 소속 현대삼호중공업·한진중공업·성동조선·STX조선·신아SB지회, 현대미포조선노조를 비롯한 9개 조직이 참여했다. 이들이 손을 잡은 것은 비단 조선업의 위기라는 요인만이 아니다. 그것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조선업 노사관계로 볼 때 주체가 바뀌었다. 조선노조의 전사를 되짚어 보자.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여파로 대공장에는 노조 민주화 바람이 불었고, 94년에는 전국조선노조협의회(조선노협)가 결성됐다. 당시 조선노협은 현대그룹노조총연합(현총련)·대우그룹노조협의회(대노협), 자동차연맹 등과 함께 금속산업연맹·민주노총을 만든 주축이었다. 금속산업연맹은 산별노조로 전환해 금속노조로 재편됐고, 중소 조선노조는 산별노조로 전환했지만 대형 조선노조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 대우조선노조는 금속산업연맹 소속의 기업별노조로 남았고, 현대중공업노조는 금속산업연맹에서 제명돼 독립노조로 활동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형 조선소 노조 집행부가 새로 교체됐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 진보성향이 강한 노조 집행부가 들어섰다. 삼성중공업노동자협의회는 비록 노조는 아니지만 최근 임금 재협상을 통해 존재감을 보인 노동자조직으로 평가받고 있다. 변성준 삼성중공업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은 지난 2006년 거제시장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대우조선노조는 이를 적극 지원했다. 이처럼 현 대우조선노조(위원장 현시한)와 삼성중공업노동자협의회 집행부들은 연대경험이 많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민주파 집행부가 들어선 현대중공업노조(위원장 정병모)와 조우한 것이다.

그간 대형 조선사들은 외환위기(98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의 파고 속에서도 승승장구했고, 이런 경쟁구도에서 노조들도 각개 약진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과잉중복 투자의 거품이 꺼지면서 중소 조선소들은 도산과 폐업행진을 이어갔지만 대형 조선사는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었다. 고유가 바람을 타고 석유·가스 채굴 해양플랜트 사업이 호황을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셰일가스 상용화와 저유가라는 부메랑을 맞으면서 해양플랜트 사업마저도 내리막을 걷게 됐다. 이것이 현대중공업에서 시작된 대형 조선소의 실적 악화와 위기, 그리고 감원 바람의 배경이다. 이런 주체적·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돼 조선노연이 결성된 것이다.

조선노연은 폐업에 몰린 중소 조선소 지원과 고용안정 대책, 중대재해 근절과 제도개선 마련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중대재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물량팀의 전수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조선노연은 4월 전 간부 워크숍, 5월 대규모 공동 집회, 6~7월 시기집중 공동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조선노연은 조선업을 살리기 위한 노사정 대화 틀을 구성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업 실적 악화와 맞물려 조선노연이 출범하면서 조선업 노사관계는 다시 꿈틀대고 있다. 기업 울타리 벗어나 조선업종 노사관계를 모색하려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조선업 호황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소극적이다.

“대형 조선사는 기업별노조가 알아서 하니 사용자는 갈등을 겪지 않았어요. 정부는 그저 관객이 되어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대형 조선사는 모범적인 노사협력 기업이라는 환상이 만들어진 것이죠. 호황이 만든 거품입니다. 조선업 노사관계가 실종된 탓이에요. 조선노연은 조선업 노사관계를 복원하려 합니다. 이젠 정부와 사용자도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노조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회적 대화 틀을 만들자는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울산과 거제에서 만난 조선사 노조 대표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조선업은 불황국면에 들어섰고, 종전의 관행과는 결별할 때다. 조선소 노사만큼이나 정부도 능동적이어야 한다. 정부는 조선노연의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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