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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68] 어찌하여 우리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십니까
편집부  |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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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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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그해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아시아아메리카자유노동기구(아프리) 사건으로 강남경찰서에 연행된 사람은 총 25명이었다. 이들은 무지막지한 폭력을 당하면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 여성조합원들은 모두 구류 15일을 살고 나왔다. 그러나 황만호·전태삼·김영대·박계현·김성민, 임기만·이덕곤·문숙주 그리고 이소선·임현재·이승철 등 11명에게는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부상당한 신광용은 기소중지됐다.

이소선은 포고령 위반으로 감옥에서 나온 지 두 달도 안 돼 또다시 구속된 것이다. 이번에는 조합원들과 함께 구속됐다. 뿐만 아니라 아들 전태삼과 함께 구속된 것이다. 이소선은 구속된 조합원들한테 지워진 짐을 자신이 대신 짊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겨울 혹독한 추위보다도 매서운 현실이 언제 끝날지, 과연 끝이 있기는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이소선은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을 그 어려운 길로 가라고 요구하고, 그 요구를 지키겠다고 약속하라고 죽기 직전에 다그쳤던 아들 전태일을 한 번도 원망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때마다 죽은 아들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었다. 뼈까지 오그라들도록 추운 경찰서 유치장에서 잠 못 이루는 이소선은 꿈인 듯 현실인 듯 전태일을 만났다.

"어머니 힘내세요! 우리 어머니는 이겨 낼 거예요."

기소장에 적힌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과 아들 전태삼,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은 줄줄이 포승줄에 엮여 구치소로 넘어갔다. 구속영장이 떨어졌다.

세상 그 어느 나라 저항의 역사에서 전시(戰時)가 아닌 평시(平時)에 이렇게 모자간에 줄줄이 포승줄에 엮여 끌려간 사례가 있는가. 그것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로 이런 수모를 주는 권력이 또 있을까.

청계피복노조 노동자들의 아프리 투쟁은 그즈음 소위 체육관 투표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이 맨 처음 미국을 방문한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아프리 사건은 미국 교포사회에 알려져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을 규탄하는 사유 중 하나가 됐다.

검사는 이소선의 기소장 별명란에 '노동자의 어머니'라고 적었다. 재소자 신분 카드에도 그렇게 적었다.

이소선은 '노동자의 어머니'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봤다. 1970년 아들 전태일이 까맣게 탄 몸으로 피를 토하면서 “어머니는 노동자의 편에서 싸워 주세요”라고 했던 유언을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한 이후로 줄곧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다. 감옥에서 나온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또 감옥에 들어왔다. 그것도 아들 전태삼과 함께 말이다. 죽어 가는 아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무를 수도 없었다.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지켜야 할 약속이다.

하지만 밖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어떤 지경에 처해 있을까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큰아들 전태일의 죽음으로 외아들이 돼 버린 태삼이가 79년에 청계노조 조합원인 윤매실과 결혼해서 딸 여진이를 낳았고, 몇 달 전에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젖을 막 뗀 아이 하나와 갓난아기 둘이 고물고물한 상태다.

며느리 윤매실은 시어머니와 남편의 옥바라지를 한다고 거의 날마다 큰 것은 손잡고, 쌍둥이 하나는 앞에 안고 또 하나는 등에 업고 구치소를 오갔다. 이소선은 면회 온 며느리한테 면목이 없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뭐 할라꼬 이리 자주 오노? 힘들게."

"힘들어도 어머니만 하겠어요? 어쨌든 몸 상하지 않게 식사 잘하세요."

"여진 애비는?"

"여진이 아빠도 어머니 끝나고 면회할 거예요."

큰 손녀 여진이도 애긴데 이제 막 태어난 쌍둥이 손자들이 아직 이름도 짓지 않은 상태에서 태삼이가 감옥에 들어온 것이다.

이소선은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며느리 윤매실한테 마음속으로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자신은 노동운동에 미쳐서 전국 각지를 싸돌아다니고, 집에는 시도 때도 없이 조합원은 물론 사방팔방에서 손님이 찾아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데다, 늘 가난에 쪼들려 허둥댔지만 며느리 윤매실은 찾아오는 손님에게 밥해서 먹이는 일을 아무런 불평도 없이 해내는 사람이었다.

며느리는 먹고살기 위해 신설동에서 삯바느질을 막 시작했는데 남편도 시어머니도 덜컥 감옥에 들어와 버렸으니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해야 했다. 거기다 어린 아이 셋을 키워야 하는데 이제는 두 사람 옥바라지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이소선은 혼잣말을 되풀이했다. '나야 내가 좋아서 이러지만 저 며느리나 어린 손자들은 무슨 죄가 있어 이 고생일꼬!’ 그러면서 그는 자책을 했다. '언제 한번 내 자식들한테 알뜰한 어미 노릇 해 볼 수 있을까? 이번에 밖에 나가면 따뜻한 할미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이소선은 담배 한 대 깊숙이 빨았다 길게 내쉬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곳은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감옥이다. 그래 기도를 해야 한다. 어렵고 앞이 막힐 때는 기도를 해야 한다.

‘언제 알뜰한 어미 노릇 한번 할 수 있을까’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십니까? 이 시련 당신의 뜻이라 해도 우리에게는 너무도 힘들고 버겁나이다. 우리는 남을 미워하거나 남에게 나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권리를 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우리의 생명과 같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것밖에 없습니다. 지금 차가운 감방에서 외롭게 떨고 있는 청계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너무나 순수하고 선한 당신의 어린 양입니다. 어린 양을 살피시어 이들이 하루속히 감옥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들이 있는 감옥에 임하셔서 한 사람도 건강을 헤치지 않게 살피소서. 밖에서 남편도 없이 어린 자식들 키우면서 고생하는 우리 여진이 어미 특별히 보살펴 주셔서 지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소선의 간절한 기도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이소선은 아들 전태삼을 비롯해 청계노조 식구들 10명과 같은 법정에 나란히 서서 재판을 받았다. 군부독재는 모자가 나란히 서서 재판을 받게 했다. 인권은 고사하고 인륜도 없는 악마와 같았다.

재판 결과 이소선은 징역 10개월을 받았다. 아프리 농성에 참가하지 않은 지부장 임현재와 지도위원 이승철도 10개월을 받았다. 주동자급으로 분류된 전태삼·황만호·김영대·박계현 등은 3년형을 비롯해 1~3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문숙주·이덕곤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내가 3년을 받아야 하는데…. 태삼이가 먼저 나가야 네가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할 낀데, 징역이 바뀌어서 우짜노."

이소선은 면회 온 며느리한테 죄지은 것처럼 말했다. 정말 지금 형편으로서는 자신이 아들의 징역까지 살고 싶었다. 쌍둥이 손자의 첫돌이 다가오는데도 챙겨 줄 사람이 없었다. 어른들 세상과는 달리 그저 구김살 없이 자라는 쌍둥이 손자들의 방긋 웃는 웃음에 덥석 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 면회소 유리벽을 더듬어 봤지만 냉기만 전달돼 왔다.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손녀 여진이는 어미가 시키는 대로 ‘할머니’를 제법 부른다. 저리 어리고 예쁜 손자들한테 남들처럼 평범하고 자애로운 할머니가 되는 길이 그리도 멀단 말인가!

이소선은 징역 10개월을 살고 만기 출소했다. 출소해서 집에 와 보니 집안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며느리는 삯일 하랴 남편과 시어머니 옥바라지 하랴 아이 셋 키우랴 정신없이 뛰었지만 돈벌이가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아이들 분유값도 바닥이 나서 허덕허덕하고 있었다.

이소선은 손자 손녀를 제대로 안아 볼 여유도 없이 중앙시장으로 나갔다. 헌옷 장사라도 해서 분유값이라도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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