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서울중앙지법이 올해 6월 말까지 하나-외환은행 통합 절차를 중단시킨지 한 달째다. 흡사 마주 보며 달리는 열차와 같았던 하나금융지주와 금융노조 외환은행지부(위원장 김근용)도 숨 고르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지난해 7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조기통합 선언 이후 외환은행의 5년 독립경영을 보장한 2012년 2·17 노사정 합의서를 이행하라는 지부의 요구는 어느 순간 '반대를 위한 반대' 혹은 '발목잡기'로 폄훼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으로 2·17 합의서 효력은 물론이고 지부 투쟁의 명분과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김근용(46·사진) 위원장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올해 1월부터 중단된 승진 발령·직원 연수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데다, 하나금융이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과 구조조정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통합 예비승인을 내줄 태세였던 금융위원회는 법원 결정 이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지부가 투쟁기금을 모으고 금융위 앞에서 이날로 36일째 농성을 계속하는 배경이다.

김 위원장은 "2·17 합의서가 추상적인 약속이 아니라 법률적 효력을 가진 문서라는 것을 법원이 인정했는데도, 하나금융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금융, 진정성만 보여 줬어도…"

법원의 힘을 빌려 가속도가 붙던 물리적 통합에 브레이크를 걸긴 했지만, 통합이라는 게 결국 당사자들 간 대화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다. 이 대목에서 김 위원장은 거듭 '진정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하나금융이 진정성 있게만 다가왔어도 사태가 이 지경으로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하나금융이) 강자의 입장에서 포용하고 감싸안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힘으로만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7월 조기통합 선언부터 두 달 뒤 외환은행 직원 900명 대량 징계, 올해 1월 통합 예비인가 신청서 제출에 이르기까지 하나금융은 항상 외환은행 직원들의 감정을 배려하는 화학적 통합에는 무관심했다. 지난해 11월 마련된 대화 자리에서도 하나금융은 기존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였다고 김 위원장은 지적했다.

"사측은 조기통합이란 결론을 정해 놓고 너희들은 대충 콩고물이나 얻어 가고, 입 다물고 도장이나 찍고 나가라는 태도를 보였다. 결론을 정해 놓고 얘기를 하자는 건 노조에게 들러리나 서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김 위원장은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다"며 "하나금융이 대화를 하고자 한다면 진정성부터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다"

최근 김정태 회장은 사실상 연임 결정이 난 뒤 "외환은행노조와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나금융은 통합 절차를 중단시킨 법원에 이의신청을 준비하고 있고, 대화단은 사실상 해체시켰다. 사측 대화단에 참여한 인사는 문책성 인사를 당했고, 지부 대화단에 참여하던 인사는 영업점으로 발령났다. 최근에는 "노조 간부들로만 구성한 대화단을 새로 꾸려서 만나자"는 공문을 지부에 보내왔다.

김 위원장은 "노조측 대화단 구성 권한은 전적으로 위원장에게 있는데도 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마음대로 발령을 내 버렸다"며 "자기들 의도대로 판을 짜겠다는 것이 아니겠냐"고 비난했다.

"최근 김정태 회장이 모처에서 '피의 숙청을 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무슨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노조에 대한 김 회장의 관점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 위원장은 "노조는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의 시작은 2·17 합의서에 대한 존중과 IT 통합 중단 같은 진정성을 보이는 것부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한 번도 하나금융지주의 일원임을 부정한 적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시너지를 내는 통합, 하나금융지주의 발전과 금융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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