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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66] 뒷걸음질 칠 것인가, 싸울 것인가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 입간판. 민종덕

이소선은 졸지에 빼앗긴 노조사무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청계피복노조 사무실. 평화시장 옥상에 있는 사무실은 1970년 노조 창립 당시부터 쓰던 사무실이다. 일곱 평 남짓한 좁은 공간이지만 멸시받고 천대받는 청계천 노동자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 노동자들이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고 함께 해결하던 곳이다. 고단한 노동을 잠시 쉬고 정다운 얼굴을 맞대고 한 줌 햇볕을 쬐던 곳이자 늦은 밤 우리를 짓누르는 세상과 맞서 그것들을 바꾸기 위해 허기진 배를 참아 가며 거칠게 토론하다 서로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의기투합해서 마음을 모으기도 했던 곳, 수많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드나들어 문턱이 닳고 곳곳에 손때가 묻어 있는 곳, 그렇게 꿈과 희망과 분노와 좌절과 아우성과 사랑과 미움과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었다. 그랬던 곳이 거대한 권력의 힘에 의해 접근하기조차 불가능하게 됐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아프리를 농성장소로 정하다

사무실에는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나무에다 글자를 파서 새긴 그저 그런 간판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이소선은 온몸을 바쳤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민주인사들의 목숨을 건 투혼과 한숨과 분노와 외침이 서려 있는 간판이다. 그 사연 많은 간판이 군부독재 정권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손만 뻗으면 금방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지만 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막혀 이제는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참담한 상황에서 발붙일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죽으려고 해도 죽을 곳이 없다더니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장소마저 없다. 이소선은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평화시장 계단에 앉아 남몰래 울었다.

투쟁을 준비해 온 사람들은 일단 '아시아아메리카자유노동기구(아프리·AAFLI)' 사무소를 농성장소로 찍어 놓고 아프리 사무소에 대한 사정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81년 1월20일 임현재 지부장과 이승철 지도위원이 대명당구장에서 당구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민종덕은 당구를 치고 있는 임현재 지부장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아프리 사무소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뜻밖에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1월30일 오후 4시께 미국인인 모리스 파라디노 아프리 본부장이 한국에 와서 임현재 지부장과 면담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프리는 미국 노총이 아시아 후진국 노동조합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청계피복노조는 아프리로부터 노동교실 기자재를 지원받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아프리에 대해서는 상반된 시각이 있다. 후진국 노동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구로 보는 관점과 다른 한편으로 후진국을 조금 지원해 주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투쟁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자신들이 아프리에 가서 투쟁을 하게 되면 아프리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모리스 파라디노가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노동연맹 아시아 지역기구 연사로 참석했다가 한국에 오는 것을 놓치지 않고 그와 함께 농성을 한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이라고 봤다.

이날부터 민종덕은 신광용·전태삼·황만호와 을지로 6가 덕수다방·양지다방·솔다방을 전전하면서 회합을 했다. 이들은 지금 노조가 강제로 해산당하는 상황에서 이대로 뒷걸음질 친다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으니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아프리 사무소를 점거해 파라디노와 면담을 요구하고 해산된 노조의 원상회복을 위해 농성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민종덕은 성명서 등 유인물과 농성에 필요한 음식물·초를 준비하고 신광용·황만호·김영대·전태삼은 각자 노조원들을 동원하기로 업무 분담을 한 뒤 박계현·김성민·임기만·이덕곤·문숙주·정화숙 등 12명에게 개별적으로 이 사실을 알리고 동조를 얻었다.

디데이는 아프리 본부장 내한하는 날

아프리에서 농성하기로 한 사실이 미리 정보기관 등 다른 곳에 알려진다면 일을 치르기도 전에 사전에 검거될 수도 있었다. 이에 따라 소수 몇 명만 모여서 의논을 했다. 수시로 장소를 옮겨 가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민종덕은 빼돌린 타자기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방 주인이 출근한 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커튼과 담요로 문을 겹겹이 가리고 농성에 필요한 호소문과 성명서를 작성했다.

호소문에는 당시 한국 상황에서 청계피복노조를 비롯해 민주노동운동이 어떻게 탄압받고 있으며 앞으로 어떠한 탄압이 자행될 것인가를 폭로하는 내용을 담았다. 아프리에는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우리는 당면한 당국과의 투쟁을 힘써 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 약하고 외롭다. 우리의 이러한 외로운 생존권 투쟁, 민주노동운동 발전투쟁에 당신들의 성원을 요청한다. 당신들은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의 생존권이 보장되고 세계평화가 이뤄질 것이 아닌가. 우리는 긍지를 갖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들이다."

당시에 이란에서 미국인 인질 사건이 일어났다. 노조는 아프리에서 농성을 하게 되면 그런 차원으로 받아들여질까 봐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 노동단체에 "연대를 요청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렸다.

성명서는 아프리에서 농성을 하면 당국이 '사대주의자'로 매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쓴 것이었다. 유신정권 말기에 야당과 민주세력이 미국한테 한국 독재정권을 지원하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독재정권은 이것을 두고 야당과 민주세력을 사대주의로 매도했다. 그리고 '청계피복노조 해산명령을 철회하라'는 문건에는 당국에 대한 요구사항을 담았다.

1월29일 오후 1시께 이소선은 임현재 지부장과 함께 아프리 사무소를 찾아갔다. 아프리 한국소장 조지 커틴을 만나 노조 원상회복 문제를 건의하고, 그간 지원해 준 재봉틀을 계속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민종덕 사무장이 함께 갔는데, 아프리 농성을 앞두고 사전답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농성 조건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소선과 임현재 지부장은 이날 면담 결과 다음날인 30일 오후 4시께 내한하는 아프리 본부장을 만나기로 했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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