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3월까지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플랜B 수립을 요청해 논란이 됐다. 노사정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대단한 결례”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대한상의 주장이 노사정 대화에 찬물을 끼얹은 것과는 무관하게 3월까지 노사정이 합의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의제의 중요성이나 합의 결과가 지니는 파급력에 비해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이다. 과연 3월까지 노사정 합의는 가능한 것일까. 어떻게 하면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전망을 모았다.



낮은 사회적 공감대, 패키지딜 어려워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는 3월까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3대 노동시장 현안(통상임금·근로시간단축·정년연장) △사회 안전망 확충에 대한 협상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의제의 폭이 넓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패키지딜 방식의 포괄적 합의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기존에 어느 정도 논의가 진행된 근로시간 문제라던가, 내년부터 시작되는 정년 60세 의무도입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방안 등 사안별 접근은 가능할 것이다. 통상임금 문제의 경우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이 사회적 잣대로 작용할 것이다.

노사정은 개별적 사안을 놓고 각자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다. 노동시장 패러다임 변화와 이에 따른 고용노동시스템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거시적 관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협상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기존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노동시장 구조를 변화된 시대에 맞게 바꿔 나가려면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한 배경이 뭔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충분하게 설명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노동계나 경영계와 논쟁이라도 벌여야 한다. ‘정규직 과보호’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노동부가 던진 편향된 의제 재설정해야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장

지금의 노사정 대화를 보면 고용노동부가 던진 의제를 소화하고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노사정에서 노동이 고립되는 양상도 보인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말은 문제가 있다. 정규직·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혐의를 두는 것을 전제로 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중구조가 발생한 것은 맞지만 이런 구조를 만든 당사자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 모든 책임을 이들 노동자들에게 묻는 흐름으로 논의가 전개되면 문제를 풀어 나가기 힘들다. 정작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해법도 도출하기 어렵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진단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만들어진 이중시장 구조를 고착화하는 노동유연화 기조는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정책적 요인을 발전시키는 흐름은 미약하다. 이런 근본적 성찰에서 출발해 의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노사정이 정부가 내세운 과제와는 다른 독자적 의제 설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의제를 누가 설정하느냐는 결정적 권력이 될 수 있다. 의제 설정이 편향돼 있으면 논의를 아무리 잘해 보려 해도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편향돼 있는 의제부터 재설정해야 한다.

노동운동 어젠다 설정 실패로 정부에 끌려가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

합의가 되면 재앙이고, 합의가 불발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노사정위를 통해 노동시장 구조개선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노사정위 탈퇴 협박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을 한국노총도 알고 있을 것이다. 노사정위에 참여해 정부 정책에 들러리 서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이 어젠다 설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설정한 어젠다를 노사정위에서 다루면서 한국노총이 남의 어젠다에 끌려가면서 반대하고, 반대하면서 끌려가는 형국이다.

노동시장에 엄청난 문제들이 많은데 현재 한국노총은 자기 어젠다로 만들 능력이 없다. 예컨대 청년실업에 대해 한국노총이 노동시장 구조개선 논의에서 무슨 말을 하고는 있는가.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정규직이 일정 부분 유연성을 양보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어젠다 설정에 실패하면서 내 것 지키기에만 바쁜 모양새다.

지금으로선 그 누구도 노사정위 협상을 전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노총 내부 민주주의가 죽어 있는 탓이다. 사회적 토론은 둘째 치고 내부에서 토론하는 모습이 없다. 몇몇 간부가 받을까 말까를 결정하는 시스템에서 점쟁이가 아닌 이상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나.

노사정 협상에 앞서 대통령 공약 이행부터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김영삼 정부 때인 94년부터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때까지 정권 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정책 제1 순위는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지난 대선에 와서야 이런 분위기가 바뀌었다.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이슈로 떠올랐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위 정규직 과보호론을 제기하면서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그런 다음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이 나왔다. 내용을 살펴보면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파견업종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 내용도 담겼다. 이미 실패한 사용기간 확대는 왜 다시 들고나왔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고용관행 정착 △2020년까지 연평균 노동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단축 △정리해고 요건·절차 강화와 같은 공약 이행을 먼저 요구해야 한다. 공약을 이행하고 난 나머지를 노사정 협상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진행 중인 노사정 협상 전망은 어둡다. 대선 때와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정부가 제시한 안이 과연 협상이 가능한 안인지, 협상 의지를 담은 안인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정부가 먼저 약속을 지키고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이것이 협상의 전제조건이자 노동계 요구사항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월 시한에 얽매이지 말고, 단계별 합의 검토하자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통상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사회안전망이 의제다. 사회안전망은 큰 틀에서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다음부터는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3대 현안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파괴력이 큰 이슈들이다.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의제가 아니다.

다만 3대 현안은 최근 2년간 노사정위 외에 다른 곳에서 다뤄져 온 것들이다. 노사정의 결단만 남은 상태다. 통상임금은 기준이 될 수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고, 정년연장은 내년부터 시행된다. 근로시간단축의 경우 큰 방향은 사실상 결론이 났다. 근로시간단축이 힘든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이 쟁점이다.

반면 비정규직 보호대책과 정규직 과보호 개선대책이 부딪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문제를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독일의 하르츠개혁이 자주 거론되는데, 하르츠위원회에서 합의가 나오기까지 3~4개월밖에 논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5년 정도 미리 논의한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사정이 3월이라는 시한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가능한 분야부터 세 단계로 나눠 합의를 시도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1단계는 3대 현안, 2단계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3단계는 사회안전망을 합의하는 단계별 패키지 합의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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