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구직자들을 상대로 한 취업사기가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사무직 채용공고를 내고 수습기간이라는 명목으로 영업활동을 시키다가 해고하는가 하면, 투자를 해야 채용을 해 준다면서 구직자들에게 돈을 뜯어낸 일당도 있다. 불법행위가 명확한 경우 취업사기라고 이름을 붙이고 처벌을 하면 되지만, 취업을 미끼로 청년실업자들을 싼값에 부려먹는데도 ‘합법’인 경우가 허다하다. 당장의 실업률을 저하시키려고 하는 정부의 목표와 싼값에 노동자들을 돌려 가며 일을 시키려는 기업의 욕구가 맞아떨어져서, 취업을 미끼로 한 공공연한 노동착취가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많은 이들의 분노를 일으킨 소셜커머스업체 위메프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위메프는 구직자 11명을 대상으로 2주간 현장실습을 받도록 했으며, 이 기간이 끝나자 전원을 불합격 처리했다. 정직원과 같은 수준으로 영업업무를 시켰고, 영업을 성사시킨 구직자들도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불합격시켰다고 한다. 위메프는 이들이 수습사원이 아니라 채용절차로 2주간의 현장실습을 진행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채용절차든 수습기간이든 상관없이 위메프가 채용을 미끼로 직원들의 업무를 이들에게 대신 시켜 왔고, 그 성과를 저임금으로 누려 왔다는 점이다.

취업을 미끼로 한 전통적인 노동착취는 바로 실업계고(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실습이었다. 현장실습은 ‘실습’이 아니라 ‘실습’의 이름을 지닌 노동이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의하면 심야작업을 할 수 없게 돼 있지만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근무하던 현장실습생은 과로로 인해 뇌출혈을 일으키기도 했고, 심야노동을 하던 현장실습생이 폭설로 무너진 지붕에 깔려 사망한 적도 있다. 젊은 노동자들이 현장실습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취업을 위해 이런 현실을 참고 견디고 있다. 학교는 취업률 경쟁 때문에 이런 현실에 눈을 감고 학생들을 현장으로 내몬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취업을 미끼로 불안정노동을 강요하는 정책을 계속 만들어 낸다. 대표적인 것이 인턴제도다. 동부금융네트워크에서는 실적을 달성하면 계열사의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면서 청년인턴을 뽑았으나, 사실상 정규직 전환율은 0%였다. 인턴사원들에게 과도한 영업을 강요한 탓에 한 인턴이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다. 현장경험을 쌓고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를 넓히기 위해 만든 제도라는데, 많은 기업들이 이 점을 악용해 대규모로 인턴을 뽑아 일을 시키고 기준에 미달한다면서 채용하지 않고 또 다른 인턴을 뽑아 일을 시키고 있다.

명백하게 합법적인 취업사기다. 여기에 정부도 동참한다. 대표적으로 정부 산하 연구기관 인턴들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0.7%밖에 되지 않았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정규직 채용시 청년인턴 경험자를 20% 할당하라고 지침을 내렸지만 실제로는 16% 정도밖에 채용하지 않았다. 이런 지침 자체가 인턴은 채용의 전 단계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로 고착된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청년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원한다. 좁은 취업경쟁의 문을 뚫고 들어가기 위해 기업이 원하는 바는 다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기업들은 이런 처지를 이용해 채용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고, 인턴제도도 만들고, 수습기간도 늘려서 사실상의 업무를 시킨다. 청년들이 이런 제도의 굴레를 쓰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 순간 기업들은 더 이상 정규직 채용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싼 인력을 쉽게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든 과정을 거치더라도 안정된 일자리를 얻고자 하는 청년들의 기대는 결국 배신당할 수밖에 없고, 안정적인 일자리로의 취업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취업을 미끼로 한 기업들의 ‘갑질’에 한순간 분노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위메프는 갑질 논란이 벌어지자 수습사원 11명 모두를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한 기업에서는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될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채용 과정이라는 이름으로 저임금의 노동을 하고 버려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구한다. “채용 과정을 단순하게 하라. 교육이 필요하면 채용해서 교육하라. 수습기간을 더 이상 늘리지 말라. 공공부문에서부터 정규직 채용을 늘려라”고 말이다. 청년실업자들이 스펙을 쌓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돈과 노력의 아주 조금만이라도, 목소리를 높이고 함께 싸우는 데 보탤 수 있다면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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