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5년은 소란하게 시작되고 있다.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탓이다. 노동부는 지난달 29일 비정규직 처우개선 및 노동시장 활력제고 방안이라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할 이 정부안을 발표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파견 대상과 업종의 제한을 완화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종합대책은 비정규직 노동단체 등으로부터 집중 성토의 대상이 됐다. 때마침 TV 인기드라마 <미생>에서 비정규직 장그래의 처지에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터라 이 안은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 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 달라고 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번 정부의 종합대책은 “비정규직의 확대는 시장경쟁 심화로 인한 기업의 비용 절감, 인력운용의 유연성 확보 및 고용형태의 다양화 등에 기인한다”며 “이는 선진국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며, 불가피한 측면도 존재하나 우리나라는 △기간제(한시직)의 높은 비중과 고용불안 △차별과 근로조건의 격차 △체불 등 비정상적 관행이 상존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부는 “이번 대책은 △고용형태별 맞춤형 대책을 통해 근로조건 격차 축소 △비정규직의 남용 방지 및 불합리한 차별 해소에 중점에 둔 것”이라고 기본방향으로 밝혔다(종합대책 3면). 따라서 기간제·파견 등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임금 등 처우를 개선해서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줄이고 정규직 채용 여력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관행을 개선하는 부문별 세부 대책을 발표했던 것이다. 이미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법은 차별금지를 선언하고 있다. 기간제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를, 파견법은 파견근로자를 정규 노동자와 차별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 즉 임금·상여금·성과금, 그리고 그 밖에 근로조건 및 복리후생 등에 관한 사항에 있어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에 대해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기간제법 제8조), 파견근로자에 대해서는 “사용사업주의 사업 내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고 있다(파견법 제21조). 비정규직의 임금 등 처우를 개선해서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줄여 정규직 채용을 유도하겠다는 이번 정부안은 비정규직법을 집행해야 할 노동부 등 정부의 일을 자신이 제대로 수행해 내지 않았음을 자백하는 자술서에 불과하다. 법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신청을 하지 않더라도 노동부로 하여금 사용자에게 시정 요구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기간제법 제15조의2, 파견법 제21조의2). 굳이 제도개선을 통해서 노동조합에 차별시정 신청권한을 부여하지 않아도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실태조사를 통해 얼마든지 비정규직 차별을 시정해서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줄여 정규직 채용을 유도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도 하지 않다가 제도개선을 통해서 그것을 하겠다고 종합대책을 노사정위 논의를 위해 정부안으로 제출했다. 제도가 아니라 의지다. 지금 이 나라에서 비정규 근로자가 차별 처우를 받는 것은 비정규직 차별 처우를 개선할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 차별 처우를 개선할 의지가 없어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 사용을 줄여 정규직으로 채용토록 하는 개선 방향은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줄이고 정규직 채용을 유도하겠다는 제도 개선의 의지만으로 이 나라에서 법이 허용한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기 어렵다.

2. "대한민국 30년 성장의 기틀을 다져나가겠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구조 개혁의 의지를 밝혔다. 지난 5일 용인행 버스에서 제목을 읽고서 내용까지 스마트폰에서 깨알만한 뉴스기사를 읽게 됐다.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했다는 말이다. 혹시 노동개혁에 관해서 뭐라고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였다. 있었다. "노동시장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며 특별히 강조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면서 "지난 연말 노사정위에서 개혁의 큰 틀에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해 대타협을 이뤄 주기를 바란다"고 역설했다고 뉴스는 강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자권리 타령으로 살아가는 나는 떠올려 봤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말했던 노동시장 개혁이 무엇이었더라.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이 신입의 2.8배에 이른다고 말한 것이 있었다. 정규직의 해고를 쉽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또 뭐더라. 비정규직의 사용기간도 늘려야 한다고 했던가. 대통령의 특별한 개혁 의지가 두렵다. 이렇게 개혁이 두려운 나는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자인가. 아니면 기득권자를 대리하는 자인가. 대통령은 30년 성장의 기틀을 세워 내겠다고 하고 있건만 나는 그 발목을 잡는 짓이나 하고 앉아 있는 게 틀림없다고 용인행 버스에 한심하게 앉아 있었다. 신입보다 2.8배의 임금을 받는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을 삭감해서는 안 되고, 그 차이를 줄이려면 신입직원의 임금을 대폭 인상해 주면 된다고 나는 말하고, 정규직 해고는 정리해고·징계해고, 또 무슨 통상해고로 이미 사용자가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이 나라에선 법과 판례로 보장해 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이제 낡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렇게 개혁하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건가. 그래 그렇게 하기만 하면 노동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건가. 그럴까. 그런 것 같기는 하다. 정규직이라도 저임금에 맘대로 해고할 수 있는데, 비정규직과 다름없는데 굳이 비정규직법의 간섭을 받는 비정규직 사용할 일 없는 것이겠다. 뭐 이런 세상은 노동자가 죽어야 잘살 수 있다는 세상이다. 그런데 절대다수인 노동자들은 죽어야 하는데 그럼 누가 잘산다는 거지. 그래 사용자 자본이 잘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정말로 국민경제가 1%라도 더 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말 노동자가 잘살지 못하는 이런 방법이어야 이 나라는 30년 성장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날 저녁 퇴근길에서는 노동자권리를 저하시키는 걸 두고서 개혁이라고 말한다면 날마다 노동자권리 타령하는 나는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자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뉴스를 읽고 말았다. 반갑지 않은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3. 개혁이 반갑지 않은 이 시절에 양대 노총 위원장이 만났다. 지난 7일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이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을 예방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이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 등 최근 노동현안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향후 공동대응을 협의하는 자리였다며 뉴스는 다음과 같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한 위원장은 모두 발언을 통해 "오늘 면담을 국민이 허투루 보시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엄중한 노동 정세를 노동자들이 힘을 합해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로 받아 주실 것"이라며 "오늘의 자리를 '단금지교(쇠붙이를 끊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한 교분)'의 계기로 삼자"고 말하고,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현 노동정국에 공동대처해야 한다. 비정규직 '장그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를 공동의 화두로 풀어야 할 책무가 있다"면서 "유력동천(노력의 힘은 하늘도 움직인다)의 자세로 난국타개를 위해 손잡고 나가자"고 답했다. 단금지교도, 유력동천도 이 뉴스의 해설기사로 나는 그 말을 알았다. 노사정위에서 정부안에서 제시한 논의 주제를 협상하겠다고 합의서에 서명한 노총과 그 노사정위에 참여조차도 하지 않고 있는 노총의 대표자들이 한 말이라서 내가 그 말을 알아먹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한자의 조합이니 한글로 표시된 사자성어의 말을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비정규직 대책 등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 맞서 두 노총이 단결해서 투쟁하겠다는 말로 읽었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박근혜 정권의 노동시장 개혁에서 어떻게 노동자권리를 지켜내고 확보해낼 것인가. 양대 노총 위원장들의 면담을 허투루 보지 않는 국민으로서 비정규직 '장그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 읽었다. 그리고 양대 노총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양대 노총 위원장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시작된 노동시장 구조개악 추진에 대한 문제인식을 공유하고 양대 노총 정책단위의 긴밀한 공조체계 마련 및 3~4월 시기를 맞춘 투쟁태세 정비를 위해서도 상호 공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 부분에서 그 말을 한 취지를 알았다. 그러나 그 말이 진정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에 맞서 양대 노총이 단결해서 투쟁하겠다는 말로 읽게 될지는 아직은 나는 알지 못한다. 신년 사자성어처럼 실현되거나 말거나 단지 소망을 담아내는 그럴듯한 말로 전락할지는 지금은 알지 못한다. 분명히 단결해서 투쟁한다면 노동자권리를 저하시키려는 자본과 권력의 노동시장 개혁 추진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만 나는 지금 알 뿐이다. 법도 제도도 아니다. 노동운동의 의지다. 자본을 위한 노동 개혁을 극복하고 새로운 노동자권리를 쟁취해내는 것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단결해서 투쟁하겠다는 노동운동의 의지다. 그 의지를, 이 나라 노동운동을 허투루 보지 않는 국민에게 분명히 보여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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