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드라마 <미생>의 인기를 보고, 정부가 기간제·파견제 노동자의 사용기간 제한을 연장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자 “2년 돼서 잘릴 것을 4년 돼서 잘리게 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문제의 일부만을 지적하는 것이다. 현행 기간제법·파견법의 사용기간을 연장하더라도 고용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간제 노동자를 4년까지 쓸 수 있게 한다고 해서, 그 노동자를 4년 동안 계속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6개월이건 1년이건 근로계약서에 적힌 계약기간만 쓰다가 재계약을 안 하는 방식으로 4년 이내에 언제든 자를 수 있다.

기업은 기간제·파견제 사용기간이 늘어날수록 인력운용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시키는 대로 일하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는 재계약을 거듭하면서 쓰다가 언제든 잘라 버릴 수 있다. 재계약이나 무기계약직 전환을 기대하는 노동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경쟁하며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차별시정 신청이나 노조가입은 불안정한 고용조건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비정규직이 싼 임금에 이리도 열심히 묵묵히 일을 하니, 월급 많이 받으면서 내보내기도 어려운 정규직은 갈수록 눈엣가시가 된다. 그래서 필요한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채우거나, 임금을 깎거나, 기업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노동자를 자를 수 있는 해고 규제의 완화가 요구된다.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요약하면 대충 이런 줄거리가 된다.

민주노조운동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두 가지다. 고용 여부를 저당 잡힌 비정규직은 너무 큰 위험 부담에 노동조합으로 문제를 푸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어렵게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려도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사상 최초의 조합원 직선제로 집행부를 세운 민주노총이 지금 씨름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노동조합이, 그리고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들고 찾아올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 미조직 노동자가 단결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할 때 그 투쟁을 억압하는 제도와 탄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 번의 총파업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이고, 기존의 조직구조와 운동의제를 변모시키기 위한 지난한 혁신이 요구되는 일이다.

이런 것들을 추진해 보면 어떨까. 민주노총과 산별·연맹은 산하노조가 자기 사업장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한 활동에 힘을 쏟도록 기획·지도한다. 간접고용 노동자까지 포함해 비정규직을 노조로 조직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것이다. 그에 못 미치더라도 최소한 계약해지·재계약 거부를 막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산하노조의 이러한 활동을 뒷받침하는 조합원 교육·법률 지원·실태조사 사업은 중앙과 지역본부가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비정규 노동자가 투쟁에 나서도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파견·용역·사내하청 노동자라는 이유로 ‘진짜 사장’은 법 뒤에 숨어 비정규직을 탄압하기 일쑤다. 특수고용노동자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온전히 보장받고 진짜 사장이 최소한 단체교섭에는 나서도록 노조법 제2조 개정을 민주노총의 대정부 투쟁 목표로 삼아야 한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많은 국민이 장그래가 경쟁에서 살아남고 정규직이 되기를 응원했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장그래에게 누군가 노동조합을 권할 수 있거나, 장그래가 자신의 문제를 들고 찾아간 노동조합이 장그래들의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는 책임 있는 조직으로 변모하는 것, 평범한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에게 바라는 것은 총파업보다는 이런 변화가 아닐까.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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