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길 역사연구가

보르네오섬에 인구 30만명 정도의 브루나이 왕국이 있다. 풍부한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외국 유학까지 무상으로 뒷받침해 줄 정도로 복지가 잘돼(?) 있는 나라다. 특이하기 짝이 없는 이 나라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A leader is one who
Knows the way
Goes the way
And shows the way
(리더란 길을 알고 있고, 길을 열며, 길을 보여 주는 사람이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혼란스런 시기다. 여기저기서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바로 이럴 때 리더는 어느 곳으로 길이 날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스스로 몸을 움직여 길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줘야 한다.

높은 직책을 꿰차고 앉아 큰소리를 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리더라고 말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 주변에 그런 리더 아닌 리더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대목이 있다. 리더는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지만 그가 제시하는 길에 대해 선진대중과 후진대중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선진대중은 방향을 원하고 후진대중을 정책을 원한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내재돼 있다. 선진대중은 방향만 주어지면 함께 길을 만들어 간다. 스스로를 주체로 사고하는 것이다. 반면 후진대중은 남들이 길을 만들어 놓으면 그때서야 걸어간다. 스스로를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지적 수준도 매우 높고 지위도 높은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분들 중에는 방향을 제시하면 평론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방향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부족한 것을 잔뜩 늘어놓은 뒤 고개를 흔든다. 이분들은 함께 길을 닦고 완성시켜 나가고자 하는 실천의지가 별로 없다. 과연 이런 분들은 선진대중과 후진대중 어느 쪽에 속한다고 봐야 할까.

진보운동에서 선진대중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리더가 방향을 제시하면 자신들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비전으로 만드는 것도 선진대중이다. 현장을 거점으로 보다 광범위한 후진대중을 조직적으로 안내하는 역할 역시 선진대중의 몫이다. 각계각층을 연결하는 ‘진보정치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진보정당의 안정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 또한 선진대중의 역할이다.

과거 학생운동·노동운동·농민운동 등 부문운동과 민주화운동·통일운동 등 과제 중심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시기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원동력은 공통적으로 선진대중 조직화가 빠르게 진행된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선진대중 조직화의 관점이 무뎌지고 체계가 허물어졌으며 조직화의 성과 또한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선진대중 조직화 관점이 약화되거나 심지어 사라졌음을 드러내는 지점은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 모든 문제의 집약점인 비정규직 투쟁을 들 수 있다. 모든 투쟁은 선진대중을 발굴하고 훈련시키며 조직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를 통해 지속적인 역량축적을 이룰 때 진보운동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간 비정규직 투쟁은 이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얼마 전 어느 지역에서 오랫동안 비정규직 사업을 해 온 지인을 만났다. 지인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 그간의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동안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수는 대략 1천20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계속 운동을 하는 경우는 몇 손가락 안에 꼽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순간 대부분은 현실에 안주해 버립니다. 현상유지에 집착하는 보수화된 정규직 대열의 일부로 흡수돼 버리는 것이지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삼을 때는 열심히 투쟁한다. 사회적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한다. 그런데 정작 목표가 달성돼 버리면 실천투쟁에서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특정 지역이 아닌 모든 곳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역량 축적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운동’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묻고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선진대중 조직화는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근본적 사회변혁의 비전을 공유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점이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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