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재계가 정규직의 고용·임금 경직성을 이유로 해고규제 완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현장의 기업들은 정년연장이나 통상임금 확대에 대한 인건비 상승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생산방식을 바꾸거나 교육훈련을 강화해 일터혁신을 미리 준비한 기업들은 인력감축과 같은 충격적인 방법보다는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사발전재단 주최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태영빌딩에서 열린 ‘일터혁신 세미나’에서 이영면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이 같은 내용의 ‘2014년 일터혁신지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터혁신지수 조사는 올해 7~10월 전국 기업으로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면접조사에서 노사 모두가 응답한 기업 1천개를 표본으로 정했다. 노사관계·인적자원관리·인적자원개발·작업조직 부문에서 혁신한 정도를 각각 평가해 400점을 만점으로 환산했다.

임금삭감보다 임금피크제·생산성 향상 선호

이 교수는 주요 노동현안인 통상임금과 정년연장에 대해 별도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정년연장으로 예상되는 인건비 부담에 대해 답한 589개 기업 중 “인건비 증가가 거의 없다”고 답한 기업이 절반 정도인 49.2%였다. 인건비가 10% 미만으로 오를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38.9%, 10~20% 미만이 9.3%, 20% 이상이 2.5%를 차지했다.

정년연장으로 기업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고용과 임금을 유연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정부·재계의 분석과 차이가 있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5일 “한 번 뽑으면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다 보니 임금피크제도 잘 안 돼 노동 문제를 기업이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년연장 때문에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졌고, 임금체계 유연화 또는 해고규제 완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영면 교수의 조사 결과 정년연장에 대한 기업의 대응책을 보면 고령인력을 정년 이전에 퇴출하거나 직무가치가 낮은 일을 시켜 임금을 삭감하는 방안은 각각 10.4%와 12.5%에 그쳤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인건비 부담 완화(52.9%)와 고령인력의 생산성 향상방안 마련(23.9%)이 가장 많았다. 갈등소지가 높은 감원이나 강압적인 임금삭감보다는 임금피크제와 생산성 향상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임금 영향? “안 오르거나 10% 인상”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기업의 인건비 부담도 정부나 재계의 주장과 거리가 있었다. 관련 질문에 답한 612개 기업 중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라 “인건비가 10% 미만 오를 것”이라고 답한 기업이 38.6%로 가장 많았다. “인건비 상승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응답이 23.5%로 뒤를 이었다. 20% 이상이 오를 것이라고 답한 기업은 12.9%에 불과했다. 정년연장에 따른 인건비 상승 부담에 대한 조사 결과처럼 기업이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인건비 상승 부담이 거의 없다고 답한 기업 중 38.2%는 “고정상여금 비중이 낮다”고 답했고, 27.8%는 “연봉제 사원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부나 재계가 주장하는 임금의 경직성 정도가 약하다는 얘기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대한 대응책을 봐도 “수용가능한 수준이라 특별한 계획이 없다”는 답변이 35.1%로 가장 많았다. 초과근로단축(24.8%)·기본급 전환(23.2%)이 뒤를 이었다. 인원감축은 3.1%에 머물렀다.

“중소기업 큰 문제 없을 수도”

이번 조사에서 표본대상 중 70.9%가 300인 미만 기업이라는 사실도 주목된다. 중소기업의 지불능력을 이유로 통상임금 확대나 정년연장을 반대해 온 정부·재계의 주장과 엇갈리는 대목이다.

이영면 교수는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중심으로 통상임금·정년연장에 따른 기업부담 증가 논란이 진행돼 온 것과 달리 중소기업은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분석했다.

한편 평소 생산방식 개선이나 임금체계개편·교육훈련 강화를 통해 일터혁신지수를 높인 기업일수록 통상임금 확대와 정년연장에 대응하면서 인력감축과 같은 충격적인 방법을 자제했다. 통상임금 확대에 대해 초과근로를 줄이거나 생산성을 올리려는 기업의 일터혁신지수가 각각 227.3과 224로 가장 높았다. 반면 인력감축을 하려는 기업은 193.1로 가장 낮았다.

이 교수는 “일터혁신지수가 높은 기업들이 채용축소나 퇴출보다는 임금피크제·생산성향상 정책과 같은 충격이 적은 방법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았다”며 “일터혁신을 미리 진행한 기업들이 큰 부담 없이 노동시장 환경변화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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