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만 변호사
(법률사무소 의연)

진폐증은 탄광 막장의 어둠과 먼지 속에서 일한 광부들이 잘 걸린다. 일단 진폐증에 걸리면 환자는 죽을 때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폐가 점점 파괴돼 생활능력이 감소한다.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진폐법)에 따르면 이들의 희생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일반적인 산재급여 외에 추가로 진폐장해위로금을 지급하는데, 나이가 들어 생계가 곤란한 진폐근로자들에게 이 위로금은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2010년 5월20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진폐법이 바뀌었다. 진폐환자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보상수준을 좀 더 평등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개정된 산재보험법은 진폐근로자 보상을 연금으로 단일화했다. 진폐법도 진폐위로금 제도를 통폐합했다.

하지만 진폐법을 개정하면서 추가한 부칙 제4조가 말썽이 됐다. 제4조의 내용은 “옛 진폐법에 따라 장해위로금을 받은 근로자가 이 법 시행 후에 진폐장해등급이 변경된 경우에도 종전의 규정에 따라 (차액분) 장해위로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종전의 규정에 따라’ 지급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옛 진폐법에서 위로금은 산재보험법상 ‘장해급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 지급한다고 했다. 장해급여의 대상이 되는 경우란 질병 치료가 모두 끝났는데 근로자에게 장해가 남은 때를 말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장해급여를 받으려면 우선 질병이 치유돼야 한다. 일반 산재환자들은 질병이 다 나으면 장해등급을 받고 그 등급에 따라 장해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진폐환자들은 병이 낫지 않으므로 장해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근로복지공단은 해석한다). 따라서 위로금도 받을 수 없게 된다.

법이 바뀐 후 진폐증이 악화돼 장해등급 제1급(심폐기능에 고도 장해 있음)을 받았으나 요양 중이라 차액분 위로금을 받지 못한 진폐환자가 있었다. 그는 공단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원고에게 위로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옛 산재보험법에서는 진폐와 다른 상병을 구분하지 않고 상병의 치유기간 중에는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지급하고, 상병이 치유된 후에는 장해등급에 따라 장해급여를 지급했으므로 요양급여와 장해급여가 양립할 수 없었다.”

즉 원고에게 적용되는 구법에 따라 요양 중에는 장해급여를 받을 수 없고 위로금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위로하듯이 판결문에 덧붙였다.

“향후 원고의 심폐기능이 개선돼 예를 들어 심폐기능에 중등도 장해만 남게 되고 요양이 종결될 경우 원고는 장해등급 제3급에 해당되게 되고, 따라서 장해위로금을 지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서울행정법원 2012구합42519)

진폐장해등급 제1급은 가장 나쁜 상태다. 필자가 아는 한 이 상태에서 사망하지 않고 제3급으로 호전된 경우는 없다. 법원은 원고를 법으로 구제하는 대신 신의 기적에 맡긴 것이다.

진폐와 다른 상병을 구분하지 아니하는데 왜 국회에서는 굳이 진폐법을 따로 만들고 일반 산재환자와 달리 위로금을 지급하는 걸까. 재판에서 법률 해석은 판사가 하는 것이니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다. 이 사건 담당 변호사는 결국 행정심판을 해 보기로 했다. 다행히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부칙을 형식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진폐법이 개정된 취지를 고려했다. 해당 규정은 법 개정 후 장해등급이 변경된 경우에도 종전 규정에 따라 차액분을 산정해 장해위로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공단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그럼에도 공단은 이후에도 다른 진폐환자가 위로금을 신청할 경우 계속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 거부당한 신청인은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위원회에서는 다시 공단의 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한다. 공단이 이처럼 실없는 거부처분을 계속하는 이유는 위 판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과 같은 유형의 사건에 대해 공단은 법원의 판단에 따른 결정을 해야 하나 행정심판에는 그런 구속력이 없다.

행정기관을 만들고 공무원을 두는 이유는 이들이 효율적으로 법을 집행하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그것이 법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공무원들은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기 위해 정해진 절차와 수단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그 결과 법을 만든 목적을 잊게 된다. 공단과 법원은 한정된 자신들의 재원과 시간을 아껴야 하므로 굳이 선례를 바꾸거나 현실을 고민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진폐환자들이 계속 행정심판을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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