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역사연구가

영화 <인터스텔라>가 흥행 대박을 치면서 웜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웜홀은 인터스텔라에서 시공간을 여행하는 통로로 제시돼 있는데 학계에서는 멀리 떨어진 두 공간에 중력을 가해 공간을 휘어지게 만든 다음,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훨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통로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터스텔라>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던 킵 손은 논문을 통해 웜홀의 가능성을 물리학적으로 증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안에 미래의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웜홀 같은 것이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지점에 힘을 집중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답은 존재한다. 비정규직이다!

생산력이 새로운 발전 단계에 이르면 기존 생산관계와 충돌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생산관계 수립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형성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세계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비정규직은 바로 그 같은 새로운 생산력과 기존 생산관계의 충돌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지점이다.

창조경제는 기존의 산업경제를 넘어서는 생산력 발전의 새로운 단계다. 기존 생산관계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돈 중심 경제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돈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는 돈 중심 경제에서 비정규직 양산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다. 비정규직은 그 자체로 비용을 절감해 주면서 구조조정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창조경제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비정규직은 창조력을 발휘하는 인간이 아니라 쓰다 버리는 소모품 정도로 간주되는 존재다. 이런 비정규직의 신분에서 자발적 몰입을 바탕으로 열정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면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비정규직의 다수가 젊은 세대로 구성돼 있음을 감안하면 이 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젊은 세대의 절대 다수가 대학을 나왔다. 석·박사 학위 소지자도 꽤 많다. 구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다. 아울러 구세대에 비해 한층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글로벌 시대를 맞이해 다양한 나라의 문화와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이 모든 결과로 젊은 세대는 창조경제가 요구하는 능력을 풍부하게 갖출 수 있었다. 인사포털 인크루트가 2010년 11월 직장인 5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창업을 하고 싶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97.1%에 이르렀다. 그중 27.8%는 실질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젊은 세대는 스스로 창업에 필요한 창조적 능력을 갖추고 있거나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생산수단을 갖지 못해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 온 노동자에 대한 전통적 시각과 상당 정도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젊은 세대가 창업에 대한 보편적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일상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나이 든 세대는 과거의 시선으로 현재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앞날이 창창한 젊은 세대는 미래의 시선으로 현재를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젊은 세대는 미래의 창업자 입장에서 눈앞에 펼쳐진 문제를 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특성을 지닌 젊은 세대의 다수가 비정규직에 머물러 있다. 과연 젊은 세대는 그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비정규직으로 있는 지금의 직장을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직장 동료들과 깊이 사귀는 것도 꺼려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면 내가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사람으로 보이냐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노동운동에도 소극적이기 쉽다. 청소노동자나 경비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평생 노동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도 만들고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젊은 세대에게는 평생 노동자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이렇듯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는 조건에서 과연 젊은 비정규직이 자발적 몰입을 바탕으로 열정을 쏟아 낼 수 있을까. 젊은 비정규직들 안에 잠재해 있는 창조적 에너지가 고스란히 사장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창조경제를 하겠다고 하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은 완전한 난센스인 것이다.

비정규직을 구조적으로 양산하는 돈 중심 경제가 창조경제 발전을 억누르고 있다. 새로운 생산력 발전의 질곡으로 전락한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근본 원인이다. 이제 낡은 생산관계인 돈 중심 경제는 타파돼야 한다. 과연 새로운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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