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금 한 권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다 읽지는 못하고 읽는 중이지만 소감을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헤리 텐트와 로드니 존슨이 함께 저술하고 2012년 권성희가 우리말로 옮긴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 디플레이션 시대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제목의 책입니다. 이 책은 현 시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경제의 위기상황과 그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가 아무리 제로금리로 돈을 푸는 경기부양책을 쓰더라도 세계경제가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디플레이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납니다.

2014년 11월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다수의 경제전문가들이 'D의 공포'를 입에 올리고 있지만 3년 전만 해도 그런 주장은 이단적인 '파국론'에 속했습니다. 아니, 바로 몇 달 전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저자들은 이미 3년 전에 디플레이션이 닥쳐올 것임을 정확히 내다봤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디플레이션을 동반하는 경제대공황이 자본주의 생산방식 그 자체에 의해 초래됐다고 보지 않는 점에서 아주 잘못돼 있습니다. 저자들은 디플레이션을 동반하는 대공황이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불의(不義)가 아니라 노동자의 소비축소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합니다. 즉 미국에서 베이비붐 세대(베이비부머)가 나이가 들어 퇴직을 준비하면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이는 데에서 위기가 오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향후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인 에코붐 세대가 핵심 소비계층으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성장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낙관합니다. 다만 250년 전 미국 민주주의 혁명 이래 가장 위대한 혁명적인 구조개혁이 있어야만 한다고 토를 답니다.

"이 시대의 도전들은 인류가 추구해 온 더 큰 자유와 더 견고한 안전, 더 높은 생활수준을 가속화할 수 있는 기회다. 우리는 새로운 성장 모델이 분명히 등장했음에도 지난 수십 년간 호황에 젖어 개혁을 늦췄다. 이번 위기는 과거의 낡은 정부체제와 경영모델, 근로형태를 더욱 빨리 폐기하도록 자극할 것이다. (…) 기업소유주들, 경영자들, 기업가들처럼 정보기술과 네트워크의 논리, 조직의 분명한 원칙을 이해하라. 이러한 원칙들을 통해 우리는 더 자유롭고 더 기업가적이 될 수 있다. (…) 이 위기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제적으로 대처하라.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을 탓하지 마라."

저자들의 주장은 아주 급진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실은 세상 모든 것이 자본이 되는 초자본주의를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진단이 틀렸으므로 처방도 당연히 틀렸습니다. 디플레이션은 인구변동과 그에 따른 소비의 주기적 변동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자본축적 자체가 스스로 빚어낸 결과입니다. 디플레이션과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는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이윤율의 장기추세적 저하입니다. 총자본이 벌어들이는 총 이윤량은 늘어나지만 단위자본이 벌어들이는 이윤량은 적어져 이윤율이 낮아집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생산성 향상을 통해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을 추구하는 한 불가피합니다. 다른 하나는 이윤생산이라는 생산의 목적에 따라 수반되는 생산(이윤)과 소비(임금)의 불균형입니다. 이 불균형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에 원인이 있지만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는 착취강화 움직임 속에서 심화됩니다. 이렇게 노동자의 주머니가 얇아지면 소비를 늘리지 못합니다.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악화되면서 자녀를 낳지 않아 인구가 줄어듭니다. 이 둘이 합쳐지면 소비가 줄고, 이로 인해 생산에 비해 소비가 매우 부족한 과잉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한동안 빚을 끌어 쓰지만 빚에 짓눌리면 한계에 도달합니다.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노동은 소비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성장도 물가도 내리막을 걷는 악순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법칙을 은폐하고 소비변동과 인구변동에다 위기의 원인을 돌립니다.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자녀들을 다 키우고 노후에 대비하면서 소비를 하지 않아 물가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베이비붐 이후 노동자들이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아 노동을 하고 소비를 할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지 않고 있는데, 이에 따른 사회의 노령화가 디플레이션을 지속시키는 요인이라고 합니다. 요컨대 모두 노동자들이 인구조절을 잘못해서 생겨난 일이라는 식입니다.

노동자들이 왜 자녀 낳기를 포기하게 됐습니까. 자녀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려면 엄청나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데, 사회가 노동자에게 그럴 조건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지 않았기 때문 아닙니까. 그것은 결국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하고 자본축적을 숙명으로 해서 굴러가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노동자들에게 강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답은 자본주의를 살리는 구조개혁이 아니라 자본주의 운행원리를 폐기시키는 변혁이어야 합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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