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변호사)

이젠 정말 기댈 곳이 없어진 것일까. 지난 한 주는 온통 우울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던 걱정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올해 초 “2009년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부당해고”라는 좋은 소식이 있었기에 대법원 판결은 안타까움을 더했다.

2009년 4월8일 쌍용차는 2천646명을 감원했고 이에 반발한 노조는 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총파업을 이어 갔다. 최종적으로 이번 판결을 받은 해고노동자들에 대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5년 가까이 무려 2천여일 동안 복직을 위해 쌍용차 조합원들과 가족,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함께했다. 안타깝지만 이들의 노력과 희생에 대한 응답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1996년 김영삼 정부는 정리해고 제도를 날치기로 도입했다. 전체 노동자들의 공분에 무릎을 꿇었고 그 길로 사실상 정권의 운명도 다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문제였다. IMF 구제금융 치하에서 또다시 정리해고가 도입되는 아픔이 시작됐다. 쌍용차 조합원들에 버금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정리해고를 중심으로 하는 IMF의 구제금융 지원방식이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실증적 보고와 평가는 수없이 많다. 전문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IMF를 졸업한 지 무려 15년이나 지난 현재 해당 제도가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반성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노동자들의 표가 필요할 때마다 정리해고 제도를 개선하거나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다. 19대 국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정리해고 관련법 개정안이 제안됐지만 상임위에서조차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이전에 제도가 개선됐으면 어땠을까. 법리상 2009년까지 소급해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대법원은 분명 달리 판단했을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대법원은 고등법원이 한 판결과 정반대의 의견을 냈다. 보기에 따라서는 법률심인 대법원이 사실 인정에 관한 과도한 개입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대법원은 정리해고에 관한 판단기준 정도만을 제시하고 고등법원에서 다시 판단하도록 했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실에 관한 적극적인 판단까지 내렸다. “경영상 필요가 있었고, 회사는 해고회피 노력을 다했다”고 단언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파기 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이 내린 판단에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안타깝지만 환송심에서 위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게 됐다.

사실 판단에도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 4년간 사실심(1심과 2심)에서 방대한 분량의 기록을 쌍방의 치열한 변론을 근거로 꼼꼼히 검토해 온 터다. 불과 8개월여 만에 사실관계 전부를 확인하고 “사실인정에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기란 상식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해 보이는 수많은 해고사건들도 수년간 선고가 없지 않는가.

하여 기대한다. 파기 환송심에서는 “경영상 필요가 있었고, 회사는 해고회피노력을 다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사실인정)에 잘못이 있음을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고등법원에서도 확인했지만 2008년 회계보고서에 기초한 경영 정상화 검토보고서에 오류가 있었다. 회사가 조작했다는 직간접적인 증거들은 충분하다. 2008년 당기순손실을 산정함에 있어 유형자산의 가치하락을 재무제표에 적극적인 손실로 반영해 부채비율을 부풀렸다. 당시 회사는 해고회피를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리해고를 위해 애썼다. 무급 순환휴직 등 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위로금과 퇴직금 마련을 위해 담보대출을 받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다시 환송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시간도 없고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그동안 조합원들과 가족들 중 무려 25명이 다른 생을 선택했다. 나머지 분들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기회에 쌍용차 문제 해결을 약속한 책임 있는 자들이 나서야 한다. 맨 먼저 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 스스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늦지 않았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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