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1960년대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집권층의 부정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면사무소 말단 공무원까지 문고리 권력을 잡고 주민등록등본 한 통 떼는 데도 뒷돈을 받았다.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낙인찍혔다. 그 가운데 가장 신뢰도가 낮은 게 통계자료였다. 특히 노동통계는 가장 믿을 수 없었다. 이런 관행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돼 자주 국제적 망신을 산다. 노동시장 관련 통계가 가장 부실했다.

부실하고 부정확한 통계는 노사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최저임금 관련 자료도 마찬가지다. 경영계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높은 편이라고 주장하지만, 노동계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가장 낮다고 상반된 주장을 한다. 10년 넘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져도 정부는 팔짱을 끼고 노사의 싸움만 지켜보고 있다.

통계청이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처음 발표한 고용보조지표에 따르면 지난달 사실상 실업률은 10.1%다. 그동안 한국은 10년 넘게 3% 초반의 저실업 국가를 자처해 왔다. 이런 식이면 그동안 공식 실업률 3%보다 2.5배 높았던 청년실업률이 실제로는 얼마나 높을지 분간하기도 어렵다. 이 지경인데도 정부와 재계는 청년들의 눈높이가 높은 것도 청년실업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라며 대책을 마련한답시고 동분서주했다. 언론은 또 이를 맹목적으로 받아 적었다.

전직 검찰총장과 전직 국립의료원장 등 사회 지도층이 자행해 온 성폭력 논란은 갈 곳 없는 청년들을 놓고 벌인 파렴치한 범죄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할 책임 있는 당사자들인 지도층 성인들이 벼랑에 내몰린 20~30대 딸들에게 추태를 부리는 꼴이다.

한편에선 청년실업을 화두로 지식 장사치들도 한창 주가를 올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88만원 세대> 등 칙릿 소설 같은 에세이로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청년들의 등골을 빼먹는 장사치들도 생겨났다. 이들 지식 장사치들의 책이 가짜 인문학 열풍을 타고 불황인 출판계를 10년 가까이 먹여 살렸다.

혜민 스님이 성추행 논란을 빚고 있는 쌤앤파커스 출판사와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밝힌 게 동아일보 11월13일자 28면에 실렸다. 김난도 교수도 이 출판사를 통해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펴냈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착취하는 사회적 갈등이 임계점을 향해 치달리는 이런 사건들이 자주 반복되는데도 언론은 한 편의 가십처럼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잠시 언급하고 말 뿐이다. 아니, 언론 스스로가 나서서 이런 황당한 꿈을 청년들에게 심어 준다. 욕망의 사다리를 나와 우리 가족만 오르면 된다는 이런 위험한 보도가 오랫동안 누적돼 우리 사회의 가치와 문화로 자리 잡은 셈이다.

중앙일보는 13일자 23면을 전부 할애해 또 이런 욕망을 부채질한다. <내 아이 27살 때 월급, 아빠의 관심이 결정한다>는 제목의 이 기사는 섬뜩하다. 작은 제목은 <아이를 바꾸는 ‘바짓바람’>이다. 치맛바람이 너무 부정적이라 아빠들이 나서 아이의 욕망을 부추기는 ‘바짓바람’을 일으키라고 주문한다. 기사는 메가스터디라는 유명 입시학원의 고2 대상 입시설명회장에서 강연을 집중해 듣고 있는 한 아빠의 사진까지 곁들였다. 이 기사는 <꿈꾸는 목요일>이란 문패를 달고 매주 반복된다.

아빠와 아이, 우리 모두가 욕망의 사다리를 하루라도 빨리 걷어차고 다른 세상을 향해 함께 가자고 주문해도 시원찮을 판에. 수능 시험날 아침에 이런 기사를 싣는 중앙일보의 의도에 소름이 돋는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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