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산업현장에서 명예퇴직 바람이 거셀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경총은 13일 오전 이사회를 열어 ‘명예퇴직제도 운영지침’을 발표했다. 경총은 “기업은 명예퇴직제도를 활용해 승진적체 완화와 신규채용 확대 등 인력관리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근로자에게 추가보상 확보, 새로운 직업경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밝혔다.

근로자 선택 존중하라지만 …

경총은 “정년 60세 의무화와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노동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기업 인력운용에 심각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어 고용선순환을 통한 효율적 인력관리의 필요성이 강조된다”며 이같은 지침을 내렸다.

기업이 인력조정을 위해 정년제한이나 경영상 해고(정리해고)를 시행할 수도 있지만 2016년부터는 정년 60세가 의무화된다. 정리해고의 경우 법적 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노사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명퇴제도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명퇴나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강요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명퇴 거부자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각종 불이익을 줬다는 논란이 끊임없이 불거지는 실정이다. 실제 씨티은행과 KT 등 올해 들어 금융권 명예퇴직을 실시한 기업의 사례를 보면 노동자들은 ‘명예퇴직(희망퇴직)=정리해고’로 받아들인다.

경총은 이런 논란의 의식한 듯 “명퇴제도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설계·운영하며 근로자의 자발적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을 지침에 넣었다.

한국노총은 논평을 내고 “명예퇴직을 실시한 기업들은 원거리 발령 또는 업무 미배치 등을 통해 명퇴를 거부한 노동자들을 탄압해 왔다”며 “사측이나 경총이 언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명퇴가 아니라 사직종용임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도 논평에서 “60세 정년 의무화를 무시하겠다는 노골적 표명이자, 제도를 피해 일상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겠다는 도발적 통보”라고 반발했다.

경총 관계자는 “명퇴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혹여라도 준비를 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면 참고하라는 의미로 지침을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지원제도 악용? … 정부 정책에 역행

경총은 지침에서 “명퇴를 실시할 경우 근로자의 새로운 직업경로 모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재취업·창업 등 전직지원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노력하라”고 밝혔다. 기업 내부 고용불안 가중과 갈등을 최소화하자는 것인데, 정부 정책에 반하는 내용이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9월 발표한 장년고용 종합대책에 따르면 내년부터 사업주가 퇴직예정자에게 훈련이나 취업알선 등 재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할 경우 장려금을 지원해 준다. 퇴직예정자에게 사전에 전직지원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전직지원 의무화제도도 추진된다.

노동자들이 ‘인생 이모작’을 설계할 수 있도록 퇴직 전에 충분히 준비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경총 지침은 사실상 명예퇴직을 전제로 전직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정년 60세를 정착시키기 위해 장년고용대책을 내놓았는데, 경총은 정년 60세 의무화가 부담스러워 지침을 마련했다.

노동부의 전직지원제도 강화 계획이 구조조정이나 조기퇴직 관행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정부가 9월에 발표한 조기퇴직을 위한 사용자 지원대책과 경총 명퇴 운영지침이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정부가 계획한 전직지원제도는 60세 정년 안착이나, 그 이상 일하도록 하기 위해 퇴직을 5년 정도 남긴 노동자들의 전직을 지원하는 것으로 경총 지침과는 무관하다”며 “기업들이 명퇴를 실시하면서 전직을 지원하겠다면 그 비용은 스스로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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