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마무리되는 즈음에는 각종 시상식이 열린다. 노동 부문의 경우 정부·경영자단체·대학·신문사들이 앞 다퉈 수상자를 선정한다. 노사협력대상·노동문화상·노사문화대상 등 명칭은 다양하다. 시상 기관과 이름만 다를 뿐 그다지 차이는 없다. 상 제정 취지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노사 간 대화와 협력을 바탕으로 상생의 문화를 만든 노사를 응원한다는 명목이다. 이렇듯 제정 취지가 한정되다 보니 수상하는 기업 노사 이외에는 관심이 시들하다. 마치 그들만의 리그처럼 됐다고 할까. 이런 노동상들이 즐비한 가운데 전태일 노동상은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

평화시장 재단사인 전태일은 70년 11월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참혹한 노동현실을 폭로하고,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불씨가 됐다. 자주적·민주적 노조운동의 출발점은 전태일의 분신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름다운 연대는 전태일의 실천에서 비롯됐다. 전태일은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어린 노동자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그는 자신의 월급을 털어 점심도 먹지 못하는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나눠줬다. 이런 작은 관심과 사랑에서 멈추지 않고, 열악한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노동현실을 바꾸려고 실천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고, 노동조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전태일이 분신한 후 이런 노력들은 청계피복노조 결성으로 이어졌다.

85년 전태일 기념관 설립에 이어 88년 11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 대회'가 개최됐다. 전태일 노동상은 이를 계기로 제정됐다. 전태일 정신을 계승해 노동운동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개인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시상하게 된 것이다. 해마다 수상자가 배출된 가운데 올해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선정됐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건당 수수료제라는 기형적인 착취구조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중단 없는 싸움을 벌였다. 이들의 투쟁과 단결력이 전태일 열사 정신에 보다 가깝고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태일 노동상 제정위원회가 밝힌 수상이유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를 이슈화했다. 전자서비스업계의 건당 수수료제라는 기형적 임금체계를 폭로했다. 그들의 싸움은 무노조 기업인 삼성그룹의 어두운 그늘을 폭로하는 계기였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첫 출발은 부산 동래 서비스센터의 노사협의회였다. 노동자들은 노사협의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민주적으로 근로자위원을 선출하는 한편 이것을 기반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지난해 7월14일 노동조합 출범을 알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시련과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노조가 결성된 서비스센터를 폐쇄하는 초강수로 압박했다. 노조 무력화를 시도한 것이다. 조합원 최종범은 이런 삼성전자서비스의 행태에 온 몸으로 저항했다. 최종범은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 전태일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라며 죽음으로 저항했다. 최종범과 그의 동료들이 원한 것은 전태일이 외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것이었다. 최종범 열사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들로부터 교섭을 위임받은 한국경총은 지난해 12월21일 단체협상을 타결했다.

전태일 노동상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수상했지만 우리시대의 모든 전태일을 대표해 상을 받은 셈이다. 그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케이블 방송 비정규직들도 노조 결성에 나섰고, 아직도 그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전태일 노동상 제정위원회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노동상을 수여한 것은 그들 모두를 응원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유사한 노동상이 즐비한 요즘, 전태일 노동상이 빛나는 이유다. 노동권 신장과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 애쓴 개인과 단체에 수여하는 전태일 노동상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