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우 기자

“돈도 직업도 팬티도 없다.” 웃픈 캐치프레이즈로 1998년 봄날 극장가를 사로잡은 영화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 ‘풀몬티(Full Monty)’다. 영화는 당시 외환위기에 처한 한국 상황과 맞물려 흥행에 성공했다. 양복을 입고 산으로, 옆 동네 놀이터로 출근하던 우리의 아빠들은 영화를 보고 울고 웃었다.

철강도시로 유명한 영국의 셰필드에서 일하던 6명의 철강노동자는 졸지에 백수가 됐다. 평생 쇳물을 만진 중년의 노동자가 실직 후 택한 일은 스트리퍼였다. 영화 말미에 이들은 여성관객 앞에서 팬티 하나 남기지 않고 벗는다. 중년의 스트리퍼는 생경한 춤 연습과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극심한 절망감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혹독하고 잔인한 법이다. 당시 아빠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거리로 내몰렸다. 개봉한 지 16년이 지난 영화를 언급한 이유는 최근 직장에서 잘리거나 잘릴 예정인 아빠들 때문이다. KT 등에 광케이블을 납품하는 일진전기에서 근무한 김아무개(46)씨는 최근 회사로부터 정리해고를 통보받았다.

회사는 광케이블 사업전망이 어둡다는 이유로 통신사업부를 통째로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6년이 넘는다. 정규직 노동자로 재취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나이다. 인터넷강국을 만드는 데 일조한 43명의 직원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처지에 놓였다.

노동자들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회사가 어려웠던 2009년과 거래처 부도로 100억여원의 손실을 입은 지난해 스스로 임금을 동결해 회사와 고통을 나눴다.

최근 금속노련 일진전기 반월공단노조는 주야 2교대를 주야 3교대로 바꿀 테니 정리해고 계획을 철회해 달라고 회사에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가 제시한 것은 기본급 3개월치 위로금이 전부였다.

일진전기는 지난해 50억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냈고, 올해 상반기에도 10억1천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비슷한 일은 롤스로이스의 계열사 마린코리아에서도 일어났다. 회사는 생산라인 외주화에 따라 직원 24명에 대한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실시했다. 지난해 397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회사다.

일진전기와 마린코리아에서 해고된 직원들은 40대를 훌쩍 넘긴 한 가정의 가장이다. 회사 성장을 위해 30~40대를 바쳤고, 낮은 기본급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특근을 한 아빠들이다.

방운제 일진전기 반월공단노조 위원장은 “다른 회사도 감원하는 추세여서 하청업체 비정규직이 아니면 취직할 곳이 없다”며 “노조는 회사가 힘들 때 도왔는데 회사는 경영을 못한 책임을 왜 노동자에게 떠넘기냐”고 하소연했다.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를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정리해고를 할 정도의 경영상 이유는 없어 보인다. 정리해고에도 상식과 예의가 필요하다. 정해진 요건이 있고, 절차가 있다. 분명 현실이 영화보다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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