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일이면 전태일 열사가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44년이 된다. 기록에 따르면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의 열악한 근로조건에 혹사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근로기준법 책을 불사르면서 평화시장 구름다리 아래에서 낮 1시20분께에 분신했다. 당시 전태일 열사가 바꾸려던 노동자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12시간 노동을 하며 월급 3천원을 받아 도시락도 싸오지 못하고 20원짜리 떡을 사서 허기를 채웠다.”(이소선 평전, 매일노동뉴스 연재) 44년이 지난 2014년 11월, 노동자들은 안녕하신가. 그들에게 전태일 열사는 어떤 의미일까.

대형마트로 간 여공들 "열사가 꿈꾼 세상 위해 손잡겠다"

김국현
홈플러스노조
선전국장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풀빵을 나눠줬던 70년대 소녀들은 80년대 쇳가루가 날리는 공장에서 일했다. 50대가 된 여성노동자들은 현재 전국 곳곳의 대형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홈플러스·이마트 같은 대형 유통기업이라는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이들은 가족을 부양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임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리자와 고객의 부당한 처우와 폭언에 시달려도 일자리를 잃을까 불안해 항의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이가 한참 어린 고객에게 쌍욕을 들을 때면 울화통이 터져 일주일은 잠도 제대로 못 이룬다. 전국 어느 곳이나 있는 대형마트에서 언제나 투명인간 대접을 받지만 마트노동자들도 사람이다. 10년 가까이 마트의 상품을 진열하고, 계산대를 지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최저임금보다 200원가량 높은 시급을 받는다. 전태일 열사 44주기, 노동자들은 많은 것들을 바꿔왔지만 아직도 한국사회는 44년 전과 마찬가지인 모습들이 차고 넘치게 보인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여전히 ‘희망’이다. 열사가 제 몸을 불살라 만들어 낸 희망처럼 마트노동자들은 어느새 서로를 ‘언니’에서 ‘동지’라고 바꿔 부르며 투쟁에 나서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열사가 꿈꿨던 세상,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도록 더 많은 이들과 손을 맞잡자.

전태일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함규식 |
전국전력노조
대외협력국장

전태일 열사는 인간과 동료에 대한 사랑이다. 자신도 열악한 환경속에 살면서도 더 열악했던 여공에게 연민을 느끼고 도왔다. 헌신했다. 올해로 전태일 44주기를 맞지만 우리 사회는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고 학교와 직장, 삶의 단계마다 오로지 남을 앞서기 위해 싸워야 했다. 그런 삭막한 인간사회에서 전태일은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다. 노동운동 역시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노조가 조직되면서 집단이기주의로 변질했다는 국민적 비판을 받고 있다. 자신을 희생해 여공을 도왔던 전태일의 사랑이 지금 더욱 필요한 이유다. 내 사업장의 비정규직부터 살피고 연대해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나부터 그런 노력을 기울이겠다.

공공기관 노동자로서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지키고 확대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서민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공공이라는 목적에 맡게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공공기관노조를 탄압하면서 공기업 민영화·사유화를 추진하려 한다. 공기업 민영화는 결국 몇몇의 뱃속만 채우고 절대 다수인 서민의 삶은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서민을 위해서라도 공공성을 유지하고 확대·강화하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

연대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교육공무직본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조직이다. 열사들은 다들 선배이자 동지들이다. 학교비정규직은 공공기관인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다른 비정규직보다는 투쟁의 조건이 유리하다. 매년 투쟁하면서 조직도 커지고 투쟁하는 성과도 계속 쌓여 가고 있다. 무기한 비정규직인 무기계약직은 가짜 정규직이니까 진짜 정규직인 교육공무직을 우리 힘으로 만들자고 결의를 하고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공무원·비정규직은 서 있는 위치는 다르지만 다들 불합리한 상황속에서 일하고 있다. 전교조 탄압으로 나타났듯이 교사들은 노동자성을 박탈당하고 있고, 공무원들은 결사·정치표현·양심의 자유를 빼앗긴 상태다. 학교비정규직이 총파업을 하지만 교육자치와 노동해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학교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워야 한다. 연대하는 것이 바로 전태일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가 직업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로 쪼개져서 각자의 소리를 내고 있는 이 상황은 전태일 열사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들이다. 정규직·비정규직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찢어져 정권과 자본에 대해 한목소리로 대응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단결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창립정신이고, 그 정신은 전태일 열사가 키워준 것이다.

권리 찾기, 노조 만들어 정규직·비정규직 함께 싸워야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
사무국장

내게 전태일은 '노동운동의 선구자'다. 사실 나는 전태일 열사를 잘 몰랐다. 예전에 영화를 통해 접한 정도였고 당시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노조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그가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고 그게 받아들여져 지금 우리가 노조활동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된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정규직이라 비정규직 동지들과는 또 다르겠지만, 우리 역시 노조가 없을 때는 법이 잘 안 지켜졌다. 시간외수당·연장근로수당뿐만 아니라 연차도 법이 아니라 회사가 정한 대로 됐다.

노조가 생기면서 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이 상당 부분 준수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대부분 정규직 조합원 위주로만 법이 지켜지고 있는 게 문제다. 비정규직이나 비조합원은 법을 알아도 당당히 요구하거나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모두 노조를 만들어 함께 싸우면 우리 권리를 더 당당히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태일 열사의 기일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는 투쟁 중이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도 씨앤앰 사측도 회사를 매입·매각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도, 최소한의 양심도 안 지키고 있다. 그동안 노동자를 부려먹기만 하다가 버린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분명히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태일 열사를 추모할 수 없는 노동현실

 윤지연
<참세상> 기자

스물세 살의 청년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 현실을 세상에 알리며 분신한 지 44년이 흘렀다.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면 노동계는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매년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도심에 모여 열사 정신을 기리고 투쟁을 결의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를 추모할 수 없다.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추모할 때가 아니라며 길거리로 나앉은 세월호 유족들과 노동자들은 너무도 닮아 있다.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전태일 열사가 꿈꿔왔던 세상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생사를 넘나드는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1970년 열사가 된 전태일의 뒤를 이어 수많은 전태일이 목숨을 잃었다. 21세기에도, 언론은 여전히 많은 전태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6일 새벽, 또 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전환 쟁취를 요구하며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언론에 비친 1948년생 전태일과 21세기 전태일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노동자대회 역시 열사 추모를 넘어, 또 다른 투쟁을 결의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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