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노동시간단축·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산하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가 연내에 큰 방향의 원칙에 합의를 하기로 한 가운데 합의문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특위 논의를 지원하는 전문가그룹 단장이 향후 논의에 대한 방향과 원칙을 제시했는데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임금·근로시간·정년 논의하면 진전 없을 것”


노사정위는 6일 오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특위 전문가그룹 단장을 맡고 있는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교수(경제학)는 “특위의 생산적 논의를 위해 중장기 과제와 현안 과제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현안 과제를 논의하기 시작하면 노사정이 서로의 입장에 고착돼 논의가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사정은 지난달 17일 특위 2차 회의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노동시장 현안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 관련 사항 △사회안전망 정비 관련 문제 △기타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사항을 특위 논의의제로 정했다.

이 가운데 현안 과제인 임금·근로시간·정년에 대한 것과 중장기 과제인 나머지 의제를 분리해서 논의하자는 것이 어 교수의 주장이다. 어 교수는 “현안 과제와 중장기 과제에 대한 개선원칙과 방향·논의방식을 별도로 정해야 한다”며 “원칙과 방향에 합의하는 과제부터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 교수는 사견임을 전제로 이런 의견을 밝혔지만, 전문가그룹 단장인 만큼 사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 교수는 특위 공익위원도 맡고 있다.

그의 제안대로 한다면 임금·근로시간·정년 등 현안 과제에 대한 노사정 합의는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노사정 간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기업 현장에서도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 교수의 제안은 사실상 중장기 과제를 먼저 논의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가 “현안 과제 개선은 중장기 노동시장 구조개선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동계 “기존 노사정 논의·판례 중심으로 정리하자”


어 교수는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에 의뢰한 연구용역 첫 모임이 열린 지난 5일 한국노총 관계자들에게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은 “독재적 발상”이라며 반발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특위 단장을 맡고 있는 분이 개인적 의견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중장기 과제와 현안 과제를 분리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두 과제는 분리할 것이 아니라 병행해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현안 과제의 경우 상반기에 국회에서 논의한 것과 기존 판례가 있는데, 이를 정리하고 국회에 권고안을 내는 것이 특위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두 과제를 분리해서 논의하면 기존 노사정 논의와 현장 단체협약, 판례가 의미 없어진다는 것이다.


연내 노사정 합의 쉽지 않을 듯


어 교수가 중장기 과제와 현안 과제에 대해 제시한 원칙과 방향성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한 듯 기존 노사정 논의와 최근 법원 판례·국제기준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현안에 대해 산업현장 노사의 자율교섭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입법화한다”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앞의 원칙과 뒤의 원칙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지난해 기준으로 10.3%에 불과하다. "노사 자율교섭을 존중한다"는 말은 현실에서 "사용자 편향적"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올해 금속 노사 산별중앙교섭에서 통상임금·근로시간단축·정년연장에 대해 현장까지 적용하는 합의안을 도출하자는 금속노조와 노사 자율에 맡기자는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가 갈등하기도 했다.

어 교수가 이날 제시한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 합리화와 해고제도 합리화 주장도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노사정위는 이달과 다음달 각각 한 번의 특위 회의를 거친 뒤 원칙에 관한 합의문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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