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영화 <카트>가 화제다. 유명 여배우들과 아이돌그룹 멤버가 출연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상업영화라는 사실만으로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중적으로 기대가 큰 데다, 마침 같은 소재의 웹툰 송곳도 호평받고 있는 때라 시너지 효과로 인한 대박 조짐이 보인다. 제작조건이 녹록지 않았을 텐데 부지영 감독과 명필름의 뚝심이 돋보인다. ‘노동’ 문제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십상인 한국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담은 영화를 개봉관에서 볼 수 있다니 가슴 벅찬 일이다.

최근 시사회에서 <카트>를 볼 기회를 가졌다. 2007~2008년 이랜드 510일 파업투쟁이 모티브가 된 작품인 만큼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용히 눈물을 쏟았다. 이랜드 투쟁 다큐 <외박>을 볼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이 울었다. 파업 조합원들의 일상의 애환이 사실감 있게 표현됐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와 아이들 간의 애틋한 긴장과 갈등, 투쟁 당사자들끼리 겪게 되는 충돌과 화해 장면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노조 결성이나 파업 돌입 과정에서 비약이 심한 것은 시간제약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가장 놀란 건 천막농성장 침탈과 공권력 진압 등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 현실을 재현한 장면들이다. 한국에서 상업영화가 담을 수 있는 최대 수위였다. 우리 조합원들의 모습을 데자뷰로 보는 것 같아 참 고마웠다.

영화에서도 노동자는 못 이기는구나 싶어 서글펐다. 구속된 위원장이 출소해 함께 싸우는 장면을 기다리다 그대로 영화가 끝나 아쉽기도 했다. 직업병처럼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과 생각이 한동안 나를 붙들었다. 투쟁 과정에서 척지고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거나 서로 외면해 온 노조간부들도 떠올랐다. 이랜드 투쟁에 연대하다 구속되고 다친 많은 동지들도 생각났다.

공동투쟁 당사자였던 뉴코아노조 동지들도 눈에 많이 밟혔다. 까르푸·뉴코아·이랜드 공동투쟁본부 홈페이지도 실로 간만에 들어가 봤다. 지난한 투쟁 과정에서 힘을 보탠 수많은 익명의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노조 말살에 혈안이 돼 아예 대화도 하지 않았던 이랜드그룹 소속으로 끝내 해고자로 남았던 동지들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랜드 홈에버 투쟁은 권고사직 12명(까르푸 소속), 해고자 6명(이랜드 소속)을 남긴 채 종료됐다. 다시 투쟁을 복기하면서 그때 이렇게 하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회한이 남는다. 목숨 빼고는 다 바친 510일 장기파업 이후 그리 나아지지 않은 현실이 생각의 그늘을 더욱 짙게 한다.

2014년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힘겹고 신산하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차별과 고용불안으로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규직들은 멀지 않은 정년을 앞두고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 떨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6천달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국민인지 의아한 현실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자본·이윤 중심 사회는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내겠다고 하더니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과 파견 확대 등 개악안으로 여론 간보기를 하고 있다. 이랜드 투쟁의 시발이 됐던 2007년 6월30일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농성은 그 다음날인 7월1일자로 시행된 비정규직법에 항의하는 투쟁이기도 했다. 정부 통계로 처음으로 비정규 노동자 규모가 600만명을 넘어서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아직도 출구에서 정규직화하겠다는 기간제한 방식을 고집하는 건 바보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숱한 희생과 피해로 반증된 정책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라.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방식을 중심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근본 처방전을 마련해야 마땅하다.

<카트>는 전태일 열사 기일인 11월13일 개봉한다. 이날은 2008년 이랜드일반노조가 홈플러스와 510일 파업을 마무리 짓는 노사합의 조인식이 열린 날이기도 하다. 13일의 각별한 의미가 심상찮게 느껴진다. <카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영화업계 비정규 노동자들의 수고가 참 많았을 것이다. 투쟁한 당사자들을 포함해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밑거름이 된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을 잊을 수 없다. 누구보다 1천만명으로 추산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이 영화를 꼭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카트>는 비정규 노동자 자신의 이야기이므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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