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세길 역사연구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재연기가 결정되자 곳곳에서 강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보진영에서는 군사주권을 포기한 점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사실 전작권 환수를 통한 군사주권 회복은 노태우 정부 이후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추구해 왔던 국민적 여망이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전작권 환수 재연기 결정은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주한미군 일부를 용산기지에 남겨 놓기로 한 결정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9조원이나 들여 평택기지를 마련했는데, 이를 무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울 한복판에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공원이 들어설 것이라는 가슴 설렌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결정 아니던가. 이 대목에서만큼은 보수적인 조선일보조차 사설을 통해 날 선 비판을 가했을 정도다.

많은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인들은 박근혜 정부의 이번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보다 40배나 크고, 한 해 군사비도 남쪽이 36배나 더 쓴다는 사실을 지목했다. 한국이 전작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결정의 이유로 북한의 핵 위협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설득력이 없다. 미국 정부는 전작권 환수와 무관하게 핵우산을 한국에 제공할 것임을 거듭 천명해 왔기 때문이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에 대한 진보진영 비판의 대체적인 기조는 자신들의 기준과 틀에 비춰 가치판단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비판이 불필요한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말 파고들어야 할 지점을 놓친 채 으레 할 수 있는 말만 늘어놓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림수는 과연 무엇일까. 아울러 진보진영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전작권 환수 재연기에 동의한 배경은 비교적 쉽게 설명이 된다. 미국 정부는 2002년 이후 지역 주둔 미군을 분쟁지역으로 신속히 재배치하는 전략유연성 확보를 추구해 왔다. 문제는 주한미군의 경우 전작권을 행사하고 있는 조건에서 재배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이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달가워하지 않은 이유였다.

그런 가운데 오바마 행정부에 와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른바 ‘균형정책’을 채택하면서 주한미군의 위상을 재평가한 것이다. 한국이 또다시 미국의 동북아 패권 유지를 위한 전초기지로 자리매김된 셈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치밀한 은폐와 위장으로 겹겹이 둘러친 조건에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간 박근혜 정부의 행보와 이를 뒷받침해 온 보수언론의 기조를 보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중요한 활로 중 하나로 삼고 있는 것은 그들 방식의 ‘통일’이다. 박근혜는 ‘통일 대박론’을 주창한 뒤 통일위원회를 설치하고 스스로 위원장을 맡았다. 여기에 발맞춰 조선일보는 ‘통일은 미래다’ 기획시리즈를 게재한 뒤 ‘뉴라시아, 원코리아 평화대장정’이라는 이름 아래 일단의 ‘무리들’이 자전거를 타고 독일에서 시베리아·단둥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벤트를 펼쳤다. 중요한 것은 박근혜 정부가 어떤 식으로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통일 전략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 왔던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요지는 간단하다. 박근혜 정부는 절대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북한을 굴복시킨 뒤 북한 지도층이 알아서 자신들에게 협력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박근혜 식 평화통일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군사력이다. 전쟁이 발생했을 때 북한이 완패할 수밖에 없음을 가시적으로 확인해 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통해 주한미군을 전쟁의 주요 당사자로 못 박았다. 동두천과 용산의 미군을 붙잡아 둠으로써 미국의 자동적인 추가 개입을 가능하도록 하는 ‘인계철선’도 확보했다. 이를 통해 북한의 핵전력과 장거리포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최첨단 미제 무기를 대량 구입함으로써 한국군의 강화된 재래식 전략으로 북한군을 제압하고자 한다. 이러한 조치를 바탕으로 박근혜 정부가 북한에 보내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분명해 보인다. “전쟁 나면 너희는 죽는다. 살고 싶으면 알아서 머리 숙이고 협력하라!”

진보는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원론적 비판을 넘어 포괄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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