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증을 설명해 달라는 환자 보호자를 만나면 초조하죠."

서울의 A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김현경(33·가명)씨는 "친절할 시간이 없다"고 한숨부터 쉬었다. "환자 십수 명을 보다 보면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한 말이다.

김씨는 "매일 오버타임 한두 시간씩 추가하는 것은 기본이고 레지던트들도 숫자가 모자라 며칠씩 밤샘당직을 선다"며 "쉬쉬하지만 주사를 잘못 놓거나 환자를 방치하는 일도 있다"고 고백했다.

병원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인력부족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수 노동자들이 인력부족 탓에 의료사고를 경험하거나 목격했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왔다. 고용불안에 떠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 있었다.


병원노동자 열에 여덟 "인력부족"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유지현)가 22일 보건의료산업 종사자 1만8천2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건의료노동자 인력현황 실태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병원 현장의 맨얼굴은 참혹했다.

응답자의 78.1%가 "병원 현장의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공공병원(27%)이든, 민간병원(23%)이든 평균적으로 적어도 현원의 20% 이상을 추가로 채용해야 부족한 자리를 채울 수 있다고 봤다.

인력부족은 고스란히 의료서비스 질 악화로 이어졌다. 응답자의 79.6%가 "인력부족으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고 답했다. 73.9%는 "환자와 보호자를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환자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답변도 65.2%나 됐다. 절반 이상(52.4%)이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투약 실수나 낙상 같은 의료사고를 겪거나 목격했다. "간호인력이 적어 병상을 줄이거나 없앴다"는 응답도 28.5%에 이르렀다.

인력부족은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건강을 해쳤다. 응답자의 64.6%가 "인력이 부족해 정해진 휴가를 쓰지 못하거나, 휴가나 퇴직으로 인한 결원을 충원하지 않은 채 일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력부족으로 노동강도가 높아져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62.2%)거나 "피로로 인해 재해나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64.1%)는 답변 비중이 높았다. 40.1%는 "정신적 고통으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노조는 "인력부족은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증가를 초래하면서 직장생활 만족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이직의 원인이 된다"며 "이직 탓에 또다시 인력부족 현상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임금격차도 컸다. 고용형태는 물론이고 성별에 따라서도 임금격차가 벌어졌다. 병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평균임금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95만8천원으로 정규직(350만6천원)의 절반을 겨우 넘었다.

특히 여성 비정규 노동자는 이중차별에 노출돼 있었다. 남성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379만9천원, 여성 정규직은 344만4천원을 기록했다. 비정규직의 경우 남성은 218만8천원으로 격차가 크지 않았지만 여성은 189만8천원으로 임금이 뚝 떨어졌다. 여성 비정규직이 남성 정규직 임금의 49.9%만 받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비정규직의 업무만족도가 떨어졌다. 직장생활 만족도 조사에서 비정규직은 고용안정과 임금수준(각 10점 만점)에 대해 각각 43.4점과 44.3점을 줬다.

요구사항도 엇갈렸다. 2014년 노동조합의 핵심과제를 묻는 설문에 정규직은 주로 임금인상(58.4%)를 요구했지만 비정규직은 임금인상(32.7%)만큼 고용안정(21.2%)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노조 관계자는 "질 낮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에 골몰하며 표면적인 고용률을 높이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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