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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이야기, 직장 내 성적 괴롭힘박윤진 공인노무사(사단법인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박윤진
공인노무사
(사단법인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직장내 성희롱 상담이 다른 노동상담과 크게 다른 것 중 하나는 내담자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에서의 라포(마음의 유대) 형성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법률상담이라기보다 심리상담에 가깝기도 하다. 사건 개요만 파악하면 해법이 어느 정도 보이는 노동사건과는 달리 직장내 성희롱사건은 상담부터 신고·처리 절차·사건 해결, 그 이후까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직장내 성적 괴롭힘은 사건 종결서라는 것을 도대체 쓸 수 없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제대로 라포 형성이 되지 않는다면 상담자도 내담자도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다.

성희롱 문제제기 후 벌어진 일들

A씨는 출판계에서 보기 드물게 안정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직원이 되기 위한 17개월이라는 비상식적인 수습기간을 감내했다. 성추행까지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정직원이 된 뒤에도 성추행 당한 사실을 꺼내지 않았다.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그러나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보며 그녀는 용기를 냈고, 성추행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대표 등은 그녀를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린 내부고발자로 몰았고, 가해자가 비운 사무실을 청소하라고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도 감시했다. 그는 결국 퇴사했다.

근무했던 2년 동안 총 7번의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는 B씨 역시 정규직 전환 약속을 믿었고, 때문에 중소기업 CEO들의 음담패설과 성추행도 견뎠다. 성추행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지만 집단적 따돌림까지 경험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을 이틀 남긴 시점에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고, 끝내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C씨는 르노삼성자동차 연구소에서 일하며 1년 가까이 직장 상사로부터 일방적인 애정표현과 개인적인 만남 제안 등 지속적인 성희롱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해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회사는 사직을 종용했다. 피해자가 무고한 사람을 신고한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집단적으로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물론 심지어 그녀를 도운 동료까지 징계하고, 승진심사 기회를 박탈하고, 회사 기밀문서 반출 절도죄로 형사고소까지 했다. 성희롱은 성희롱으로 끝나지 않았고, 사건을 신고하고 처리한다고 해서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직장내 성희롱과 불이익 조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14조2항은 "사업주는 직장내 성희롱과 관련해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직장내 성희롱이 조금이라도 가시화되고 사건화되기 시작하면 이른바 '불이익조치'가 본격화한다.

피해자에 대한 일방적 해고 또는 징계조치, 사건의 은폐나 피해자 유발론의 조직적 유포, 묵언과 방조, 미흡한 가해자 징계조치, 회사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협박, 명예훼손 또는 손해배상 청구 등의 협박, 형사적 고소, 집단적 따돌림, 사직 종용 및 압박, 인사상 불이익, 승진 누락, 강제 전출, 업무상 불이익 등 성희롱 사건의 신고와 함께 또는 사건 처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괴롭힘이자 2차 가해다.

이러한 불이익조치는 실제 성희롱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사실에 대해 대응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게 하는 배경이 된다. 불이익조치 유형은 매우 다양하고, 교묘하고 기가 차다. 불이익조치의 상담사례들을 꿰어 보면 결국 피해자의 ‘퇴사’로 향하고 있다. 왜일까.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를 조직에서 퇴출시킨다는 것은 문제 제기자(피해자)를 조직에서 도려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희롱 피해자의 문제제기는 조직의 문화와 관습에 균열을 내는 행위로 기업의 통제 권한과 지위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자들은 조직을 관리하고 조직을 책임진다는 미명하에 인권침해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과 조직 모두가 무너진다는 논리를 편다. 특히 문제제기자(피해자)에게 동조하는 이들에 대한 불이익조치는 공포모델을 제시해 구성원에게 두려움을 내재시켜 저항을 잠재우고자 하는 것과 같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제기 이후 연속적으로 작동하는 불이익조치는 평등하게 노동할 권리를 찾으려는 피해자들의 의식과 노력을 좌절시킴은 물론 “자, 봤지? 앞으로는 알아서 조용히 덮어라”는 내부 조직원을 향한 강력한 경고까지 겸한다. “가만히 있으라.” 이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말이 이곳에도 있다.

제14조2항 위반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강력한 제재효과를 가졌던 적은 지난 13년간 단 한 번도 없었다. 불이익조치의 유형화와 법적 해석의 확장뿐만 아니라 성희롱 사건 처리절차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고 관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사업주에게 피해자 보호의무와 재발방지 의무를 법적으로 부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적어도 후속피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직장내 성적 괴롭힘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피해 발생시 사용자의 의무를 단계적으로 촘촘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위반시 법적 제재가 시정지시 따위에 머물고 만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말이다.

박윤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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