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간호사 A씨는 새벽 6시30분에 출근해 십수 명의 환자를 돌본다. 밀려오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쉴 틈이 없다. 밥은 20분 만에 삼키듯 먹는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오후 4시30분 퇴근할 때까지 그는 하루 9시간40분을 일한다. 저녁 5시쯤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보거나 밀린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밤 9시다. 바로 잠자리에 들어도 6시간만 자고 다시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A씨의 일과는 병원에서 일하는 보건의료 노동자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유지현)가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1만8천263명의 보건의료산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더니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0시간에 육박했다.

병원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2004년 7월 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반짝 감소한 뒤 매년 증가하더니 시행 이전보다 오히려 길어졌다. 지난 17일 노조가 발표한 '보건의료노동자 노동시간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를 <매일노동뉴스>가 살펴봤다.

점심시간도 없이 주 49시간 노동

보고서에 따르면 보건의료 노동자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8시간, 주당 48.9시간이다. 주당 노동시간은 지난해(46.9시간)와 비교해 2시간 가까이 늘었다. 노조에 따르면 주당 노동시간은 2004년 47.4시간에서 2005년 주 5일제 효과로 45.1시간으로 줄었다. 그런데 주 5일제 효과는 잠시뿐이었다. 2006년 45.2시간으로 오름세를 시작하더니 매년 1시간 안팎으로 증가했다. 지금은 주 5일제 시행 이전으로 되돌아갔다.<표1 참조>

주 5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는 보건의료 노동자 비중이 전체의 19.6%나 됐다. 장시간 노동자 비중은 경비업(50%)에서 두드러졌다. 간호사의 평균 노동시간은 49.1시간으로 전체 보건의료 노동자 평균을 웃돌았다. 간호사의 21.6%가 주 52시간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요인으로는 인력부족과 연장근로, 병원 경영방침에 따른 토요근무제 시행, 각종 행사 증가 등이 지목됐다.

노동시간은 증가하고 있지만 쉬는 시간은 태부족이었다. 하루 평균 식사시간은 27.5분, 하루 평균 휴게시간은 20.3분에 그쳤다. 1주일에 이틀은 시간이 없어 끼니를 걸렀다.

연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 응답자의 64.3%가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사업장에서 연차를 강제지정(13.5%)하거나 반강제적으로 지정(45.8%)한다는 답변도 나왔다.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응답은 35.7%에 그쳤다.

병원의 연차소진율은 공공병원 50%, 민간병원 76% 수준이었는데, "미사용 연차를 제대로 보전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20.9%로 조사됐다.

노동자 54% "병원 떠나고 싶다"

장시간 노동은 직무만족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직장생활 만족도에 45점(100점 만점)을 줬다. 대다수가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가장 불만족스러운 요소로 노동시간(만족도 35.8점)을 꼽았다. 인사노무(만족도 36.8점)와 임금 수준(만족도 38.2점)도 점수가 턱없이 낮았다.

이에 따라 이직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1%가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일이 힘들다"(29.9%)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근속연수도 상대적으로 짧았다. 보건의료 노동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10년 미만, 간호사는 7.5년에 그쳤다.

노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인력부족 상태로 인해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며 "장시간 노동은 이직으로 표출되고 결국 다시 인력부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어 "시간선택제 일자리로 일자리 질이 떨어지고 의료 민영화 정책으로 병원의 영리추구행위가 가속화하면 장시간 노동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조 관계자는 "정부는 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며 "국회는 인력확충을 위한 예산을 늘리고,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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