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식 변호사
(법무법인 공간)

들어가는 말

전직 국회의장의 골프장캐디에 대한 성추행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이러한 골프장이용객의 캐디에 대한 성추행이 빈발하는 것은 캐디들에 대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만일 그들이 근로자로 인정을 받는다면 골프장 이용객이 그렇게 함부로 대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왜냐하면 성추행 등 굴욕적 대우에 대해 당연하게도 캐디들은 저항할 수 있고, 특히 노조를 통해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디들이 근로자로 대우받지 못함으로써 그들이 그러한 굴욕적 처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 필시 골프장 사업주는 그러한 저항을 ‘일하기 싫은 불만’정도로 이를 치부해 그 불만제기자를 골프장에서 내쫓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경우에 캐디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대우받는다면 그와 같이 부당하게 해고된 캐디는 자신에 대한 해고가 부당해고임을 내세워 법적 구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캐디는 그러한 구제를 받을 길은 거의 없다. 골프장 사업주는 그 경우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입맛대로 정한 수칙을 정해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골프장캐디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인정 여부에 따라 그 근무조건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데도 법원에서는 잇달아 골프장캐디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본 사안의 개요

국가보훈처 산하기관인 ○○관광개발 주식회사와 그 회사가 관리하는 ○○컨트리클럽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선진화 대상 기관에 포함되게 됐다. 그런데 그 골프장에는 그곳에서 근무하는 골프장캐디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노조가 조직돼 있었고, 그 회사 경영진들은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노조가 골프장 매각과 회사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 회사 홍모 사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노조를 해산시키겠다는 취지로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 직후 회사 경기운영팀장을 필두로 그 노조에 대한 조직적이고도 치밀한 노조 와해 공작이 자행됐고, 그 과정에서 회사는 52명에 대해 경기보조원수칙에도 없는 징계인 무기한 출장유보조치를 취했다. 또한 대량 징계로 인해 노조 와해에 직면한 노조 간부들이 겨울철 휴장기를 이용해 결장을 한 것에 대해 회사는 무단결장으로 몰아 3명을 제명처분 했다.

한편 위 회사를 관할하는 용인경찰서에는 “정부 공기업 선진화 발표(매각) 이후 경기보조원 노조 무력화 일환으로 지난 11월5일부터 강성노조원 유보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중략) 골프장 휴장기(1∼2월)에는 직장 부분폐쇄를 통해 88CC분회를 정리하겠다는 계획임. (중략) ○○ 사장은 노조 정리 문제를 청와대 정무수석·복지부 장관·보훈처장에게 구두보고 재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이라는 내용으로 정보보고서를 작성했다. 또한 위 회사의 직원은 국가보훈처장의 승인 아래 회사 사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위와 같은 무더기 징계 이전부터 ‘노조를 어떻게 깨부술까 작전을 짰다’고 그 진상을 말하며, 때마침 발생한 캐디와 경기운영팀장과의 마찰 사건을 이용해 노조 와해 공작을 진행했다고 고백하며 위와 같은 경찰의 정보보고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인하기에 이른다.

원고들의 청구 내용과 재판 결과

위와 같이 무도하게 자행된 ○○회사의 무더기 출장유보조치와 노조 간부들에 대한 제명처분과 관련해, 원고들은 다음과 같이 청구했다. 즉 주위적 청구로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고, 그들이 징계처분기간 동안 받아야 할 임금은 소급임금이며, 제제로 인한 원고들의 인격권 침해에 대해 위자료의 지급을 요구했다. 제1 예비적 청구로 원고들이 무명의 노무제공계약이 체결된 근로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으며 그들이 징계처분기간 동안 받아야 할 임금은 임금과 유사한 금원이며 제제로 인한 원고들의 인격권 침해에 대해 위자료의 지급을 청구했다. 제2 예비적 청구로 원고들과 골프장 사업주인 피고 사이에 아무런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처분은 노조법 제81조가 정한 불이익취급 또는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이므로 원고들의 징계처분 기간 동안에 대해 임금 상당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하고, 또한 인격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의 지급을 구한 것이다(다만 위자료는 항소심에서 청구했다).

원고들의 청구에 대해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거의 같은 논리로 제2 예비적 청구를 인용하되, 6개월간의 징계기간 동안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그것도 원고들의 과실을 25%로 평가해 이를 과실상계 후 인정했다. 다만 그나마 다행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처분에 대해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한 후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1인당 300만원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은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심히 부당한 판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판결의 문제점

첫째, 판결은 골프장 사업주인 피고와 캐디 사이에 근로계약은 물론 무명의 노무제공계약관계도 성립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한마디로 난센스이다. 피고는 캐디들에게 가장 중요한 캐디피를 정하고 이른바 오버피를 달라는 행위를 징계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또한 각종 복무규율을 정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 엄한 징계를 하고 있다. 반면 골프장 이용객은 캐디피나 그 복무규율 또는 징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개입이나 관여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골프장 사업주와 캐디 사이의 계약관계가 없고, 골프장 이용객과 캐디 간에 계약관계가 있다니 실소만 나올 뿐이다. 게다가 2심 들어 와서 피고는 자신과 캐디들 간에 무명의 노무제공계약관계가 있다고 자백을 했음에도, 2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구체적 판단 없이 이를 깡그리 무시한 채 위와 같이 판단을 한 것이다. 지금도 피고와 원고들이 가입한 노조 간에는 근무조건 등에 대한 단체교섭이 진행 중에 있다.

둘째, 본 판결은 무기한 출장유보처분이 노조법상 불이익취급의 부당노동행위임을 인정해 위자료까지 인정했다. 이는 노조를 와해시키거나 최소한 약체화시키려는 행위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러한 징계처분에 대항하기 위한 조합원들의 일부 집단행동에 참여한 원고들의 과실을 무려 25%나 인정해 과실상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고의의 불법행위에 대해 과실상계를 허용하지 않는 기존 판례(대법원 2011.4.28 선고 2010다106702 판결 등)에 어긋나는 것이자, 정의와 형평에도 반하는 것이다. 노조가 와해돼 가는데 그럼 조합원들이 저항하지 말고 두 눈 뜨고 보고만 있으란 말인가.

셋째, 무기한 출장유보처분은 그 처분이 있은 지 5년4개월여 만에 원고들의 대법원 승소판결에 의해 철회됐다. 그 무기한 출장유보처분이 위자료의 지급도 발생시키는 불법행위임을 인정하다면, 그 불법행위의 원천이 제거되지 않은 위 기간 동안에는 재산상 손해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는 원고들이 피고의 골프장에서 일하기를 계속적으로 원했고, 이를 위해 피고의 감독기관인 국가기관에서도 몇 년에 걸쳐 시위를 주기적으로 진행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원고들 중 대부분이 5년4개월여 만에 피고의 골프장에 복직했다면, 더더욱 그와 같이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2심 재판부는 6개월이면 원고들이 다른 골프장에 충분히 취업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재산상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는 6개월의 재산상 손해만을 인정했다.

법원이 추구해야 할 정의의 길

법원은 헌법에 의해 법치주의의 최후의 보루로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았다. 소수자의 인권이 침해당했다는 것을 주장했을 때는 법원은 더욱 예민한 인권감수성을 발동해 세심한 인권옹호적 판결을 하는 것이 그 무거운 책무를 다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본 사안과 같이 무려 5년4개월 동안 캐디들의 생존권·인격권을 유린하는 무도한 징계처분에 대해 불법행위를 인정하고서도 위자료와 재산상 손해를 합해 1인당 총 1천만원 정도에 불과한 손해배상금만을 인정한다면, 누가 이를 수용할 것인가. 그것도 판결 내용이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모순에 찬 법리로, 달을 가리켰음에도 손가락만 보는 판결이라면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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