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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24] 어린 여성노동자들 노조와 함께하다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이소선과 노조 간부들은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서둘러 노조 일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갇혀 있어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이소선이나 간부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이소선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경찰서 문짝을 발로 차면서 계속 항의했다.

"이놈들아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해 준다고 하지 않았냐. 노동조합은 철저하게 막으면서 사람만 잡아 가두니 죽기로 다시 싸울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막으면서 사람만 잡아 가두다니"

이소선 일행은 경찰서 안에서 발작적으로 외쳤다. 기자들이 찾아오고 취재를 해 갔다. 신문에도 보도됐다.

경찰서에 잡혀간 지 사흘째 되던 날 노총 사무총장이 찾아왔다.

"이 여사, 이렇게 때려 부순다고 해서 무슨 일이 되겠어요? 일단 참으시고 우리말을 들으세요."

사무총장은 이소선을 달래려는 눈치였다.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보장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든가 말든가 결판을 내야겠소."

이소선 등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죽기로 각오한 탓에 두려울 게 없다는 마음이었다.

"노총에서 책임지고 노조가입 방해를 중지시키고 조합원들을 사무실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하겠소."

결국 노총 사무총장의 약속을 받고서야 경찰서를 나와 밥을 먹고 사무실로 갔다.

경찰서에서 싸움을 하고 난 뒤 사용주나 경찰의 노골적인 방해는 일단 줄어들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조사무실에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조합원이 있어야 노조를 꾸려 나갈 수 있는 것인데…. 사무실에 죽치고 있는다고 해서 노조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린 노동자들이 너무도 그리웠다. 가슴이 타들어 갔다.

행여나 어린 노동자들이 노조 문을 두드릴까 해서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린 시다 몇 명이 1원짜리 떡을 사 가지고 왔다.

"오빠들, 이것 드세요. 우리가 돈 걷어서 사 왔어요."

그 애들은 수줍은 듯 쭈뼛거리며 떡봉지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소선은 반갑고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다들이 돈이 어디 있어서 떡을 사 왔겠는가! 노조 간부들은 시다들을 보고 힘과 용기를 얻었다.

"우리가 반성하자. 지금 당장 어렵다고 좌절에 빠져 회의만 해서는 안 된다. 최선을 다하자. 그래야 우리의 참된 마음을 알아 주지 않겠나. 죽지 말고 살아서 이 노동조합을 지켜야 한다."

"죽지 말고 살아서 노조를 지켜야 한다"

노조 간부들은 어린 시다들이 사다 준 떡을 먹으면서 눈물로 맹세했다.

12월25일.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라고 들떠 있었지만 노조 간부들은 끼니도 때우지 못하고 굶고 있었다.

이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얌전하게 생긴 아가씨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아가씨는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판매한 돈이라면서 1만원을 내놓았다. 엄청 큰 액수였다. 이들은 그 돈을 보고 너무 놀라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아가씨는 이들의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였다. 조합 간부들이 21일 밤에 싸움을 해서 사무실이 엉망진창이었다. 아가씨는 침착하게 깨진 화분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살릴 수 있는 꽃은 따로 가려서 화분을 사다가 심어놓고 깨끗이 청소까지 했다.

'노동자의 마음은 이렇게 착하고 아름다운데 가진 자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구나. 그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왜 그럴까.'

이소선은 아가씨의 아름다운 행동을 보고 새삼스럽게 가진 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봤다. 착하고 예쁜 아가씨는 미싱사였다. 이름은 유정숙. 그와 같은 마음으로 박명옥·임영란·이정은 등 여성 조합원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노조에 참여함으로써 노조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줬다. 삼동회를 비롯한 남자들만 노조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사용주들이 깡패집단이라고 악선전을 해대는 것을 이제는 피할 수가 있게 됐다. 참으로 중요한 시기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노조에 참여하게 되니 차츰차츰 힘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돈이 없으니 항상 굶었다. 이소선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은 재정 문제로 고민하다 밤늦게야 집에 갔다. 집에 간다고 돈이 생기나,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나 마음만 답답했다. 이소선은 장바닥에서 무 하나를 구해 왔다. 주워 온 우거지에다 비지와 보리쌀을 넣어 죽을 끓였다. 태일의 친구들이 어찌나 잘 먹든지…. 그런 광경을 바라보는 이소선은 애간장이 다 끓었다.

전순옥이 주워 온 우거지로 끼니 때우는 간부들

이소선의 큰딸 전순옥은 낮에 시장 언저리에 가서 우거지를 주워 오는 것이 하루 일과가 돼 버렸다. 전순옥이 우거지를 삶아 놓으면 이소선이 저녁에 와서 죽을 끓였다. 운이 좋은 날은 보리쌀과 밀까지 사다가 밥을 하곤 했다.

"오늘은 재수가 되게 좋은 날인데? 밥까지 다 먹고."

전태일 친구들은 밥을 떠먹으며 좋아들 했다.

온종일 사업장을 설치고 다니면 양말이 금세 떨어졌다. 이소선은 식구대로 양말을 다 벗게 해서 빨았다. 그런 다음 연탄불에 말려서 딸과 함께 밤늦게까지 꿰맸다. 이소선은 낮에는 중앙시장에 가서 헌옷 장사를 했다.

"너희들은 사무실에 출근해서 열심히 일해라. 나는 시장에 가서 돈 벌어 올 테니까."

이소선은 전태일 친구들과 함께 집을 나서면서 당부를 하고 중앙시장으로 갔다.

헌옷 장사는 전태일 사건이 나기 전부터 하던 것이었다. 전태일 사건이 터지고 노동조합을 해야 했기 때문에 계속할 수가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노동조합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소선은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 상근자를 굶기지 않고 노동조합을 잘해 나가기 위해서는 옷장사를 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다. 헌옷을 잘 사 입었다. 헌옷은 대개 군복·작업복·고물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죽은 사람의 옷을 가져다 팔면 돈이 많이 남는다.

남들은 죽은 사람의 옷을 꺼려했다. 이소선은 달랐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떠나 버리고 육신만 남는데 뭐가 무섭냐고 생각했다. 죽은 사람의 옷을 걷어 밤새도록 깨끗하게 빨고, 고쳐서 내다 팔면 아무런 손색이 없는 옷이 됐다.

하루는 최종인과 신진철이 엉뚱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머니, 우리 암만 해도 고기나 한번 실컷 먹고 죽어야 할까 봐요."

이소선은 가슴이 철렁했다.

'쟤들이 지쳐서 이제 노동조합을 안 하려고 하는가 보다.'

"고기가 어디 있어서 실컷 먹냐? 안 죽고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냐!"

이소선은 애들이 못 먹다 보니까 정신마저 이상하게 되는가 싶은 게 공연히 불안해졌다. 그날 저녁에 콩나물을 넣고 쌀로 죽을 끓였다. 그리고 그들한테 듬뿍듬뿍 퍼줬다. 돌이라도 씹어 삼킬 만한 한창 때의 젊은이들인지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저녁 잘 먹었으니까 집에 잘 있어라. 너희들이 노동조합 안 하려고 하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가련다."

이소선은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갈 준비를 했다.

"어머니, 하나님 앞에 가면 뭐해요? 하나님이 밥을 주나요, 돈을 주나요?"

"그래도 기도를 해야지. 너희들이 노동조합 안 하려고 하니까 나는 집에 못 있겠다."

이소선은 너무나 허탈해서 밤새도록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정말 죽어 가는 생명을 구하려고 했는데 정부 사람하고 사업주가 한통속이 돼서 노동조합을 방해하고, 쟤들은 배가 고파서 노조를 못하겠다고 하니, 우리 아들이 얼마나 답답해하겠습니까? 우리 하는 일이 나쁜 일이 아니니까, 제발 쟤들에게 고기 한 번 먹여 주게 해 주세요.'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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