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은 우리나라 중화학공업 성장을 견인한 조선해양산업 부문 선두주자다. 현대중공업노조는 19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축이었다. 그러나 전투적 민주적 노조 15년, 노사 타협적 노조 12년을 거치면서 산업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노조운동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인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조선해양산업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은 재벌구조가 갖는 무소불위의 소유자 권한과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전문경영인 체제하에서 전근대적인 관리방식을 답습하는 관리구조를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노조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필자들이 현대중공업의 사업구조·경영관리구조·고용구조·임금구조·노사관계의 현재를 진단하고 향후를 전망하는 글을 보내왔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를 6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 조선산업 흐름과 현대중공업 쟁점 개관
② 현대중공업 경영구조와 관리구조 난맥상
③ 고용부문 쟁점과 과제
④ 임금부문 쟁점과 과제
⑤ 노사관계 쟁점과 과제
⑥ 현대중공업 노사가 나아갈 길

10년 전인 2004년 9월15일. 당시 금속연맹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현대중공업노조(현중노조)는 ‘비정규직 투쟁 지원’이라는 연맹의 활동방침에 고의로 반대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제명됐다. 그리고 2005년 현중노조는 회사와 ‘호혜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을 선언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에서 ‘노사관계’는 사실상 사라졌고,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현중노조 집행부 선거에서 노동자들이 ‘노사 호혜적 협력관계’ 대신 소위 ‘민주·강성 집행부’를 선택하면서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동안 현대중공업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노동자들은 변화를 선택한 것일까. 현대중공업의 변화양상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014년 현재 현대중공업의 주요 사업영역은 조선·해양·엔진기계·플랜트·건설장비 등 대체로 조선업 및 관련 업종과 2010년 인수한 현대오일뱅크의 석유정제업이다. 오일뱅크를 인수한 2010년 이후 조선업종의 비중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매출과 고용부문에서 주력이다. 현대중공업은 전체적으로 조선산업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2000년대 전 세계적인 무역량 급증으로 2004년 이후 조선산업은 전방산업인 해운업과 함께 역사상 최대 호황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한국의 조선산업은 일본을 제치고 세계를 제패했으며, 그 중심에는 현대중공업이 자리하고 있다. 2008년 말 금융위기 이후 교역량이 감소하면서 선박발주가 축소·취소되면서 조선산업은 불황을 맞게 됐다. 지금까지도 불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2012년을 바닥으로 해운사들의 선박발주가 증가세로 반전했고, 신규선박 가격 역시 2012년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로 조선업은 서서히 불황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현대중공업의 2004년 이후 기업경영 실적을 살펴보자. 현대중공업의 매출액은 2004년 9조원 규모에서 지난해 54조원 규모로 6배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2004년 981억원 적자에서 2010년 5조6천억원 흑자로 크게 증가했고,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367억원에서 4조5천억원으로 늘었다. 불황이 기업활동에 반영되는데 2~3년의 시차가 걸리는 조선산업의 특성상 매출액은 2012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2010년을 기점으로 하락하고 있다. 그래도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중공업의 누적 영업이익은 20조554억원, 당기순이익은 15조5천779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2004년 이후 현대중공업은 규모뿐 아니라 이익 측면에서도 큰 폭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왜 지난 10여년간의 ‘호혜적이고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거부하고 변화를 선택했는가. 현대중공업이 승승장구하던 2008년까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매년 월 기본급 8만~9만원 정도 연봉이 인상됐다. 그런데 회사 순익이 수천억원대에서 조원 단위로 급격히 늘어난 반면 연봉인상분은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변동급인 일시급과 성과급만 증가했다.

그러다가 2009년 신규 선박수주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당시 현중노조는 임금협상을 포기하고 사측에 위임했다. 회사에서는 노조의 위임 결정에 정기호봉승급분인 2만3천원만 인상해 사실상 임금을 동결해 버렸다. 하지만 2009년 현대중공업은 2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런 점에서 2009년 현중노조의 임금교섭 위임·포기 선언은 현중 노동자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어 2010년과 2011년 연속해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2011년 현중노조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9만원의 임금인상이 이뤄졌다. 그리고 지난해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하면서 호봉승급분 2만3천원 포함 3만500원만 인상했다. 노동자들은 노조가 회사에 협력적인 데다,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호혜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집행부 변화를 선택했다.

노동자들이 변화를 선택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지난해 신규 선박수주가 2000년대 초·중반 수준으로 회복하고 선박수주 잔량이 5년 만에 증가세로 반전되는 경향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환경적 요인).

이와 함께 직영노동자들이 정년퇴직을 하는 빈자리를 사내하청으로 채우거나, 늘어난 물량을 달성하기 위해 사내하청을 대거 충원하는 회사에 대한 불만도 쌓여 가고 있었다. 실제로 2004년 기능직 직영 대 사내하청 비율은 0.68로 직영 노동자가 많았지만 지난해에는 그 비율이 2.41로 사내하청이 두 배 이상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사내하청의 대거 활용으로 인건비를 줄이면서도 임금인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현장 노동력 요인). 나아가 현중 노동자들은 인접한 현대자동차가 2009년 이후 승승장구하는 동안 노조가 파업전술을 병행하면서 높은 임금인상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회사가 잘나가는 동안에도 사측의 반복되는 위기대응 논리에 노조가 순응하면서 보상·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졌다(외부 학습효과).

현중 노동자들은 “입사한 뒤 20년 넘게 맨날 위기라는데, 회사의 말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년간 잠재해 있던 ‘노사관계 부재’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변화의 원인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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