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 2차 합의 직후 의총에서 비타협적인 전면투쟁을 결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듯 보이자 유족의 입장을 무시한 채 특별법 합의에 응한 뒤 허겁지겁 원내에 복귀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선택을 두고 진보정당들은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진보정당들은 대체로 청와대와 여당에 대해 비타협적인 투쟁을 강조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국민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증거는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에서 ‘타협’이라는 두 글자를 놓고 다방면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보수적 논객들은 강도 높게 타협의 정치를 부르짖었다. 이런 가운데 강준만 교수는 언론 기고문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타협을 주문했다가 네티즌으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과연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분명 다수의 국민은 타협 없는 강경 일변도의 태도에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실질적 문제 해결에 이르지 못한 채 소모적 대결만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타협이 대중의 공감과 지지를 얻는 것도 아니다. 타협도 타협 나름인 것이다.

역사는 타협을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먼저 타협은 지난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투쟁 시기로 돌아가 보자. 당시 전두환 정권과 민주화 세력 사이에 개헌을 둘러싼 첨예한 대결구도가 형성돼 있었다. 구도는 보수대연합을 겨냥한 내각제 개헌과 민주적 정권교체를 겨냥한 직선제 개헌으로 압축됐다.

미국과 전두환 정권은 야당 지도부로 하여금 내각제 개헌을 수용하도록 집요하게 압력을 넣었다. 이민우 총재를 위시한 일단의 무리들이 압력에 굴복해 타협의 길을 걸었다. 여기에 맞서 김대중·김영삼 두 김씨는 비타협적 입장을 고수했고, 결국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을 통해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민주화 투쟁의 승리 결과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고 지금의 87체제가 수립됐다. 분명 87체제는 비타협적인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87체제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보자면 계급타협을 제도화한 것이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요체는 기존 권력기구를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 분쇄한 뒤 아래로부터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러시아혁명은 차르나 케렌스키 임시정부의 권력기구를 접수한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라는 아래로부터 창출된 권력기구를 바탕으로 추진됐다. 북한 역시 일제 식민지 권력기구를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위원회라는 아래로부터 형성된 권력기구를 바탕으로 수립됐다.

이 점에서 87체제는 확연히 달랐다. 87체제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공존을 바탕으로 합법적 정권교체를 가능하도록 했다. 이전 시기 지배계급이 민중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독식했던 체제에서 벗어나 지배계급의 양보에 기초한 전진적인 계급타협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진보운동의 전략노선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자세한 것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도록 하자.

출발 단계에서의 87체제는 매우 불안정한 것이었다. 다시금 배제와 독식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지배세력의 반격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그러한 위험성을 제거하는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 해체, 전두환·노태우 구속 등의 조치를 통해 군부독재의 잔재를 청산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군부독재의 배경이 됐던 한반도 냉전체제를 허무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일궈 냈다.

그런 뒤 진정한 계급타협을 구현해야 할 시기가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 체제가 몰락하자 복지국가 담론이 급속히 일반화됐다. 유럽의 경험이 생생하게 입증하듯이 복지국가는 계급 타협의 산물이다. 여기서 필수적인 것이 정치권이 계급타협을 원만하게 조율하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정치권이 그런 능력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이끌어 내야 하고 이를 위해 무엇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 하는지를 포괄적으로 담은 것이 비전이다. 이를 구현하는 것은 전략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한국의 정치권은 그 같은 비전과 전략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누구 말마따나 가치와 노선은 없고 권력투쟁만 남은 집단들이다.

진보정당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분명한 것은 타협 자체를 배제하고 비타협적 강경노선을 고수하는 것만이 선명성을 보장받는 길이 아니라는 점이다. 복지국가 건설을 요구받는 시기에 선명성은 선명한 비전과 이를 실현할 전략기획 능력에서 비롯된다. 비전을 실현하는 방향에서 타협과 협력을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내는 것이 진정한 진보 정치인 것이다. 타협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무능함이나 무책임한 타협을 남발하는 것 모두 진보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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