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에 ‘직선제가 간선제보다 좋은 건 아니다’는 글을 쓴 게 2012년 8월이다. “해외 노총들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지도부를 선출한다. 세계 어디에도 노총 위원장을 가맹노조 조합원들의 직선으로 뽑는 나라는 없다”고 썼다. 지난해 1월에는 ‘직선제가 직접민주주의라고?’하는 제목의 글에서 위원장 직선제도 ‘간접’ 민주주의, 즉 대의제일 뿐 ‘직접’ 민주주의와는 상관이 없다고 썼다.

그런데 내가 썼던 글에서 내용을 고칠 일이 생겼다. “노총 위원장을 조합원 직선으로 뽑는 나라는 없다”는 대목은 이제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노총 수준에서 직선제를 실시하는 나라로 네덜란드노총(FNV)과 아르헨티나노동자중심(CTA)을 들었다.

신자유주의·실리적 조합주의·코포라티즘에 반대하며 1991년 출범한 CTA는 정부와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지향한다. 전통적 의미의 노동 중심성보다는 사회연대 중심성의 활동노선을 특징으로 공공부문과 비제조업을 주축으로 한다. 남미 노동운동을 둘러싼 주객관적 상황과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 역사를 고려할 때 CTA의 사례가 한국 노동운동에 줄 수 있는 실천적 함의는 별로 없다.

FNV는 다르다. 역사적으로 90년대 민주노총이 국제노동운동의 인정과 지지를 받는 데 FNV는 남다른 공헌을 했다. 각종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연대와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성장하기 시작한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나라 안팎에서 자리 잡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조합원 110만명을 둔 FNV는 네덜란드를 넘어 유럽에서 대표적인 노동조합운동 조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른바 ‘폴더 모델’로 불리는 네덜란드 코포라티즘의 주체로 정부 및 사용자와 전국 수준에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한 긴 역사를 갖고 있다.

2011년 6월4일 네덜란드에서 연금제도 개혁에 관한 노사정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FNV의 최대 가맹조직인 민간부문노조 FNV Bondgenoten(산업식품서비스운수노조)과 공공부문노조 ABVAKAVO FNV가 합의를 거부했다. 두 노조의 조합원을 합치면 FNV 전체 조합원의 3분의 2를 넘지만 산하 가맹조직들의 지도부로 구성된 FNV 집행위원회에서는 두 노조의 영향력이 과반수에 못 미쳤다.

소규모 가맹조직들이 파견한 지도부가 다수를 장악한 FNV 집행위원회는 노사정 합의를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반면 두 노조는 노총 활동에 협력하기를 거부했다. FNV의 사업은 마비됐고 노총 해체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조직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FNV 집행위원회와 가맹조직들은 전직 노동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중재단을 꾸렸고, 마침내 공동선언을 끌어냈다. 핵심은 FNV를 해산하고 신노동조합운동(DNV)으로 불리는 새 조직을 출범시킨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대산별 일반노조의 성격을 띤 두 거대 노조를 산업과 업종별로 해체해 노총을 거대 노조가 좌우하지 못하는 소규모 산업(부문)노조들의 연합체로 재편하는 데 조직개혁의 초점을 뒀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부문과 산업을 넘어 덩치를 키우는 이른바 '대산별주의'를 폐기하고 산업과 업종의 동질성을 강화하는 '소산별주의'로 회귀한 것이다.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2012년 6월 ‘신노동조합운동의 발전’이라는 최종보고서가 제출됐고, 그해 10월 대의원대회에서 자영업자노조와 연금생활자노조(조합원 18만2천명)를 뺀 나머지 17개 가맹조직들의 동의를 끌어냈다.

자영업자노조와 연금생활자노조는 FNV를 탈퇴했다. 이때 합의된 조직개혁안 가운데 하나가 FNV 위원장(chair)에 대한 조합원 직선제였다. 그런데 위원장 직선제보다 더 중요한 사안은 ‘조합원 의회(Members' Parliament)’를 출범시키고 이를 최고의결기구로 만드는 것이었다. 위원장에 대한 임명과 해임 권한은 조합원 의회가 가질 권한의 일부에 불과했다.

조합원 의회는 당분간 지도부에 대한 자문기구로 기능하지만, 때가 되면 노총 지도부를 통제하는 기구로 발전시킨다는 것이 개혁안의 골자였다. 그 결과 지난해 5월 FNV 위원장에 대한 조합원 선거가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고, FNV 해체의 위기 국면에서 위원장이 돼 조직개혁안을 마련하고 그 관철을 이뤄 낸 톤 히르츠(Ton Heerts)가 초대 직선위원장에 뽑혔다. 또한 FNV의 해체와 DNV로의 개편이라는 급진적인 계획을 완화해 일단 FNV 조직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민주노총이 12월 임원직선제를 하기로 확정하고 실질적인 준비에 들어간 지금 상황에서도 직선제가 노조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며 결국 민주노총에 대한 가맹조직과 노동자들의 불신과 소외를 키울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국제노동운동의 주요 조직인 네덜란드노총(FNV)이 지난해 5월 조합원 직선제를 통해 위원장을 선출한 만큼 “세계 어디에도 노총 위원장을 가맹노조 조합원들의 직선으로 뽑는 나라는 없다”는 주장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게 됐다.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industriall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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