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해 가을 이름도 생소하고 얼굴도 낯선 위원장이 법률원을 방문했다. 깐깐한 인상의 위원장은 “이번에 새로 당선된 디어포스노동조합 위원장 조주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통상임금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방문했단다. 화학연맹 소속으로 연마지를 주로 생산한다고 한다. 연마지가 무슨 뜻인지 설명을 들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사포’보다는 큰 개념인 것만은 분명했다.

위원장의 주장은 이러했다.

"회사는 세계 5위 수준으로 매년 1천억원이 넘는 매출에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은 형편없어요. 평균 근속연수가 11년이 넘고 주야 맞교대로 한 달 80시간 넘는 연장근무를 하는데도 평균 연봉이 3천800만원에 불과합니다.”

위원장의 말은 이어졌다.

“열악한 환경을 이제는 바꾸고 싶습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임금을 정상화하는 등 할 일이 쌓여 있어요. 우선 근로기준법에 맞도록 통상임금을 산정하고 이에 따른 각종 수당을 돌려받고 싶습니다.”

현재 법률원은 디어포스노조의 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노조는 월 소정근로시간을 226시간에서 209시간으로 단축하고 통상시급을 3천원 인상하자고 회사에 제안했다. 그러나 회사는 통상임금 문제를 제외한 근로시간단축 문제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다.

노조는 정상적인 대화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올해 6월 파업을 결의했다. 여름과 추석을 지나 벌써 3개월을 넘기고 있다. 조합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고 속히 파업이 마무리되기를 소망한다.

파업 초기 회사는 형식적으로나마 노조와 협상을 했다. 연맹과 총연맹 등 상급단체가 지원에 나섰고 고용노동부도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는 최근 노사 합의보다는 노조 와해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 듯하다. 공개적으로 대체근로를 실시하고 애초 쟁점도 아니었던 조합원 범위를 문제 삼고 나왔다.

급기야 소소한 꼬투리를 잡아 노조를 상대로 형사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민사상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위원장은 수사기관의 소환에 응하랴, 손해배상 답변서를 작성하랴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사측의 공격적인 태도가 적법한지에 관해서는 추후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수사기관은 특히 법을 위반한 디어포스 사용자의 행위를 단호히 처벌해야 한다. 바로 대체근로 자행이다. 파업을 예상한 사측은 파업 직전에 신규직원을 채용했고 파업 즉시 현장에 투입했다. 당연히 노조의 파업은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조는 이 같은 사용자의 불법 대체근로를 처벌해 달라고 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노조가 항의하자 “이미 채용한 자이므로 파업 중에 채용하거나 대체한 것이 아니다”는 답변을 했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해석은 명백한 잘못이다. 쟁의행위 이전에 이뤄진 채용이라 하더라도 쟁의행위 기간 중 쟁의행위에 참가한 조합원들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 채용이 이뤄졌고, 그 채용자들로 하여금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면 법 위반이라는 것이 확립된 대법원 법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감독기관은 철저한 감독을 통해 대체근로를 막고 노조의 파업을 보호해야 한다. 관할 노동청이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노동청의 직무유기를 틈타 회사는 파업기간 동안 이주노동자까지 사용하고 있다. 생산에 차질도 없다. 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협상에 나설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상과 같은 법률적 쟁점에도 디어포스노조의 파업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우리 사회 노동현장의 오래된 적폐(?)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는 말한다. 노동현장 대다수 사업장은 300인 미만이면서 최저임금 수준에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돼 있다. 때로는 입에 담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도를 넘은 비인간적인 관리행태가 비일비재하다. 노조 활동은 고사하고 설립조차 쉽지 않은 것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디어포스노조의 파업은 좋은 결과를 맺어야 한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감독기관의 엄격한 법 집행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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