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비리기업인들에 대한 관용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달 25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되는 케이스라면 일부러 기업들의 사면이나 가석방을 차단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얘기했고, 이를 바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어받았다. 그는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원칙에 어긋나게 엄하게 법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이 배임과 횡령으로 수배 중이었던 유병언에 대해서는 위협적인 수사로 반드시 뿌리뽑겠다는 듯이 덤빈 지가 엊그제인데, 이제는 기업인에 대한 사면을 얘기한다. 얼마 전까지 한국 경제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것은 “내수 진작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기업유보금에 과세하겠다고 큰소리쳤던 경제부총리가 이제는 비리기업인들에게 투자를 읍소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한국 사회는 경제인들과 기업의 범죄행위에 참으로 관대하다.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살아야 살 수 있다’는 무조건적인 신념, 그리고 ‘경제를 살리려면 기업이 살아야 한다’는 왜곡된 논리가 지배적이다.

결국 나라를 살리는 것은 기업이고, 그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재벌총수들에게 관대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이른다. 때문에 기업과 기업인들의 범죄행위가 사회에 미치는 해악과는 무관하게 관용적인 법집행이 일상화돼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나 시민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것은 경제살리기에 해악을 미친다며 강력한 법집행을 하려고 한다.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경제살리기가 안 된다면서 세월호 유가족을 몰아치는 언론과 검찰의 태도를 봐도 알 수 있다.

경제인들의 범죄행위는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들의 주된 죄목인 배임과 횡령으로 인해 경영은 불투명해지고 기업구조도 왜곡된다. 책임은 노동자들이 지게 된다. 경제인들의 탈세는 세수부족으로 이어지고, 정부는 담뱃값 인상 등으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턴다. 자식들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기획범죄를 저지르고, 재벌 자녀들에 대한 지분 떼어주기로 인해 골목상권까지 침해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인들의 탐욕으로 인한 악영향은 시민들이 나눠서 부담하고 재벌가들은 권리만 누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범죄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환경파괴 범죄였던 2007년 삼성-허베이스릿호 기름유출 사고를 생각해 보자. 기상악화에도 무리하게 출항해서 관제실의 경고도 무시하다 유조선과 충돌한 삼성예인선단의 책임이 컸지만 삼성 책임자는 조사도 받지 않았다. 삼성은 피해액 7천341억원 중 56억원만 책임졌다. 태안 기름유출 지역에 가서 자원해 기름기를 닦아 냈던 수많은 봉사자들의 노력과 의미도 무색하게 삼성이 책임져야 할 비용의 일부를 봉사자들이 대신 분담한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지난 10여년간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분석해 보면 원청업체에 부과된 벌금액은 최대 3천만원에 그쳤다.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었는데 벌금만 내면 그만이다. 원청업체 대표의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처벌받은 경우는 없었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여수산업단지 대림산업 폭발사고와 넉 달간 10여명의 사망자를 낸 현대제철의 경우만 예외적으로 징역형이 선고됐다. 그것도 최고책임자가 아닌 공장장과 부사장이 처벌을 받았다. 유성기업에서는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동자들을 차로 치거나 소화기를 휘둘러 다치게 했는데도, 모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현대자동차에서도 대법원 판결을 통해 10년간 불법파견을 통해 부당하게 노동자들의 임금을 빼앗았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그런데도 이런 강도짓을 한 최고책임자를 처벌하지 않았다.

기업과 기업인들의 범죄에 관대한 법 때문에 사회가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비리와 횡령과 배임이 만연하고 경제구조가 왜곡된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죽음에 처할 줄 알면서도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장치를 하지 않는다.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면서도 안전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고, ‘기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의 알 권리를 제한한다. 노동자들을 더 많이 착취하기 위해 물리적 폭력도 휘두르고 불법적으로 비정규직을 고용한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위험이 상존하는 사회가 됐고 노동자들은 죽음의 공장에서 차별받으며 일하게 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메우고 있다. 기업의 범죄, 기업인들의 범죄에 관대한 사회가 만들어 내는 풍경이다.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용인해야 하는가. 기업과 기업인들의 범죄에는 관용이 아니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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