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헌
전국일반노조협의회 부의장

세월호 참극과 이에 대처하는 박근혜 정권의 후안무치한 태도 앞에서 우리의 절망은 너무나 크다. 절망만큼이나 민주노총이 하루빨리 힘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염원도 간절하다. 남은 박근혜 자본독재 3년, 우리 민주노총에겐 어떤 의미인가. 한마디로 87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적 갈림길이다. 일본의 전철을 밟아 하향평준화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백척간두 진일보의 심정으로 혁신단결해 다시 한 번 떨쳐 일어서는 역사를 열어 낼 것인지, 민주노총 혁신의 지렛대로 말해 온 직선 임원선거가 눈앞에 있다.

혁신과제가 많지만 결국 사람의 문제다. 조직발전의 견인차인 활동가운동을 혁신하고 조합원들의 참여의지를 크게 높이는 일이 그것이다. 이번 직선 임원선거를 반드시 그런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두 가지 우려와 정파협상 후보추대의 문제점

선거를 앞두고 현장에서는 우려가 많다.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부정선거와 같은 선거사고 발생에 대한 우려다. 제도를 구비하려 긴 시간을 들였지만 확고한 자신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런 우려는 정파활동가 집단의 과도한 권력경쟁으로 자칫 선거판이 이전투구의 장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우려는 조합원들의 참여가 저조해 직선제의 의미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경우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조직계통을 통한 홍보와 선전을 꾸준히 해 왔지만 현장은 여전히 선거에 대한 관심이 크게 부족하다. 서로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우려를 극복하는 방향의 선거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같이 몇몇 정파 간부들의 권력 지분협상을 통한 후보 옹립은 성패에 관계없이 문제가 있다. 성공하더라도 조합원들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고, 실패하면 함량미달 후보 난립으로 맥 빠진 선거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든 조합원들의 참여의지를 북돋기 어렵다. 독자후보를 추진하는 정파들도 마찬가지다. 회원총회 한 번 없이 최상층 간부들이 결정하는 낙하산식 후보결정도 감동을 줄 수 없다. 연합후보든 독자후보든 한마디로 이런 식의 후보선출은 조직혁신을 위한 직선제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방식이다. 무엇보다 민주노총 혁신의 벼리라고 할 수 있는 정파운동에 어떤 변화도 이끌어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민주노총 혁신, 정파운동 혁신이 관건

조합원들은 정파집단을 정파패거리로 규정한 지 오래다. 조합원들에게 도움 되지 않는 권력집단이라는 뜻이다. 사실이 그러하다. 선거 때마다 확인하지만 정파집단 과두체제는 민주노총을 움직여 온 실세다. 그러하기에 정파운동 혁신 없는 민주노총 혁신은 어렵다. 스스로 변화가 어려우면 일선 간부들과 현장의 열성 조합원들의 힘으로 변화를 강제해야 할 때다. 직선제를 직선제답게 만드는 것이 그 길이다. 단순히 정파들의 협상과 경쟁이 아니라 현장의 열성 조합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중적 직선제 운동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출발로, 그 흐름을 확대·강화하면서 지역과 산별의 광범위한 현장 조합원 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정파운동은 권력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마음뿌리가 현장 조합원들 속에 천착해 그곳으로부터 힘을 축적하고 방향을 가늠하는 지혜의 샘이 돼야 한다. 승자독식이 아니라 동지로서 숙의민주주의를 성숙시켜 내고 나아가 권력을 현장으로 돌려 조합원들의 직접민주주의 기풍을 진작해 나가야 한다. 탄압에 맞서 힘을 합쳐 투쟁하고 민주노총 혁신 재건에 지혜를 모아 내는 민주노조운동파로서 연합해야 한다. 조합원을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분열로 하향평준화를 획책하고 있는,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을 둘러싸고 있는 안팎의 정세가 특별히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적 후보추대운동은 이런 정세를 돌파해 나가기 위한 출발이다.

조합원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의 이순신을 찾자

정파운동은 대공장 정규직 활동가들이 발전시켜 온 운동으로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양극화로 대공장 운동은 기업복지에 매달린 채 지역연대운동에서 크게 후퇴해 왔고 무늬만 산별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 채 권력화의 길로 미끄러져 왔다.

그 결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나 되어 투쟁하는 산별조직들의 기풍은 점차 무너져 왔다. 민주노총의 지도구심인 중집회의가 늘 산별 관할권 문제로 시간을 낭비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주노총의 내부통합성과 민주노조운동의 계급대표성 강화에 정파운동이 긍정적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민주노총 혁신을 말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혁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이순신을 불러내자. 직선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모든 정파진영에 드리는 간절한 호소다. 혁신과 단결로 박근혜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민주노총으로 거듭나기 위해 현장 이순신들의 지혜와 의지를 모아 줄 것을 부탁한다.

이 일이 87년 민주노조운동을 처음부터 함께 경험했던 세대의 마지막 역사적 임무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10월 한 달이 중요하다. 간선제 아래서 늘 그래 왔듯이 후보조정을 위한 지루한 골방협상으로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직선 지도부의 과제를 중심으로 회원은 물론 많은 일선간부들과 열성 조합원들과 함께 대중적 지도력을 창출해 가는 과정으로 직선운동을 전개해 주기를 희망한다. 특히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여성조합원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도모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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