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금 여기는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입니다. 지난 여름, 제주를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조직된 '강정생명평화대행진'에 참여했는데요. 제주에서 나흘간 걸어서 강정에 왔었습니다. 시시각각 태풍 나크리가 다가오는 속에서 제주도의 남북을 가로질러 제주도청에서 목적지인 강정마을까지 행군했습니다.

이번에는 전태일노동대학의 3학년 '마음수련 과정' 인솔자로 이곳에 왔습니다. 26일 오전 9시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해 첫 일정으로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가 억울하고 분한 제주의 현대사를 보고 들었습니다. 이어 인근에 있는 사려니 숲길 곁의 이덕구 산전(山田)을 찾았습니다. 이덕구 산전은 4·3 항쟁 당시 군부대 토벌에 맞서 무력으로 응전했던 이덕구 사령관의 부대가 움막을 치고 생활했던 곳입니다. 토벌대에 사살된 그의 시체는 십자가 형틀에 묶인 모습으로 4·3 사건의 발생지인 관덕정 광장에 전시됐다고 합니다.

오후에는 조천읍 북촌리의 너븐숭이 학살현장과 그 인근 선흘리의 ‘낙선동 4·3 성’을 둘러봤습니다. 너븐숭이는 군인 두 명이 다쳤다는 이유로 단 이틀 사이에 어린아이를 비롯한 마을사람 600여명을 학살한 야만의 현장입니다. 이곳은 또한 산 자들이 숨죽이지 않고 ‘아이고’라는 울음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마을입니다. 낙선동 유적은 무장부대로부터 주민들을 차단하기 위해 주민들을 동원해 돌로 성벽을 쌓은 다음 주민들을 그 안에 가둬 놓은 집단수용소였습니다. 그곳은 부엌과 방의 구분도 없고 여러 세대가 한 집에 억새로 칸을 막고 함께 사는 돼지우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다음으로 남쪽인 성산읍으로 넘어와 일출봉 가는 길목에 있는 터진목 학살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서북청년단 출신들이 경찰이 돼 인근 주민들을 학살한 곳입니다.

4·3 유적 답사에서 우리 일행이 공동으로 확인한 것은 제주도는 민중학살의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체 인구 30만명 가운데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명 이상이 1948~1949년 단 1년 사이에 학살된 킬링필드였습니다.

섯알오름 학살터는 6·25 전쟁 발발 직후 4·3 사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을 예비검속자로 끌고 가서 재판 없이 학살한 곳입니다. 희생자들의 뼈는 정권의 탄압으로 발굴하지 못하다가 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발굴됐습니다. 누구의 뼈인지 구분할 수 없어 유골 모두를 한곳에 묻었습니다. 그곳을 백조일손의 묘라고 합니다. 여러 조상이 함께 묻힌 곳이라는 뜻입니다. 송악산 동굴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군이 제주도에 상륙할 때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만든 것입니다.

일본군은 물리적으로 우위에 있는 미군에 맞서기 위해 여러 종류의 자살특공대를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인 ‘카이텐’이라는 인간어뢰를 발진시키기 위해 만든 해안 동굴진지도 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공사현장 입구에서 매일 아침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취지의 일백배(拜)를 하고 있습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는 계속 공사가 진척되고 있고, 방파제가 범섬 쪽으로 제법 길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알뜨르 비행장이 복구되고 제주 남서부 일대가 태평양전쟁 때처럼 전쟁기지로 바뀔 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강정항은 '민군복합형 관광 미항'이 아니라 핵잠수함이 정박하는 미 해군의 전쟁용 군항이 됩니다. 제주도민들은 제주도가 평화의 땅이 아니라 전쟁의 땅이 되는 데 맞서 저항할 것입니다.

육지에 사는 여러분, 제주가 위험합니다, 제주에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오. 강정마을이 위험합니다, 강정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강정마을을 지켜 주십시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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