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역사연구가

얼마 전 <한겨레>에서 ‘사람 중심 경제’라는 주제로 기획 인터뷰를 연재한 적이 있다. 조순·문국현 등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인터뷰에 응했다. 주된 요지는 사람은 경제 성장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돼야 하며 사람을 소외시키는 경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국현에 따르면 독일이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도 '사람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추구한 데 있었다.

사람 중심 사고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야권에서는 ‘사람 중심 안전 중심’이 국정 운영의 기조로 거론되기도 했다. 돈 중심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면서 세월호 참사가 유발된 것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자연스런 결과였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 중심의 사고가 부각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핵심 기조였던 돈 중심 사고에 대한 강한 반작용이 일어났다.

그에 따라 사람 중심 사고가 빠르게 확산돼 나갔다. 사람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인문학 열풍이 거세게 분 것은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인문학 열풍에 적극적으로 몸을 담근 사람들은 변화에 민감한 기업 경영자들이었다. 시류를 읽지 못하면 일순간에 아웃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의외로 노동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이나 이후, 세월호 참사 이전이나 이후 노동자들의 사고 흐름에서 이렇다 할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1980년대의 일이다. 당시 운동권 안에서는 사상이론과 노선을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중 이른바 ‘사람 중심 사상’을 둘러싸고 전개된 논쟁이 있었다. 비판적 입장에 있던 흐름에서는 사람 중심 사상은 노동자 계급의식을 희석시킨다고 공격했다. 무엇보다 사람으로 뭉뚱그려 접근함으로써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 모순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노동자들은 사람 중심 사고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일까. 과연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지나온 역사는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고 있다.

시민혁명 직후 근대유럽을 지배했던 것은 돈 중심의 부르주아 사상이었다. 그 시대 모든 권리의 원천은 돈이었다. 민주주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에서조차 19세기 초까지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공장주·은행가·법률가·교수·지주 등 일정 규모 이상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부여됐다. 그런 식으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략 10만 명 정도였다. 선거권을 사고팔기도 했는데, 돈을 모든 권리의 원천으로 사고하는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돈 중심의 부르주아 사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은 노동자 계급이었다. 노동자들의 사고를 지배한 것은 모든 권리의 원천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람 중심 사상이었다. 노동자들은 1주 1표를 기반으로 돈의 지배를 제도화한 자본주의 기업 조직에 맞서 1인 1표를 기반으로 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동조합은 그 자체로서 돈 중심의 세계에 맞선 사람 중심의 세계였던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재산 소유와 무관하게 똑같은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등하게 권리를 행사하는 보통선거제 도입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그 결과 일국의 최고 통치자와 이름 없는 노동자가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시대가 열렸다.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사람 중심'은 노동자 계급이 돈 중심의 부르주아 세계에 맞섰던 가장 강력한 사상기반이었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 계급은 사람의 이익을 보편적으로 옹호하는 계급이 될 수 있었다. 반면 돈 중심의 세계를 극단적으로 복원하려고 했던 신자유주의는 역사적 반동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 중심'이 신자유주의 이후 새로운 시대를 여는 좌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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