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 축구평론가
1990년대에 영화 <넘버 3>라고 있었다. 송능한 감독의 걸작으로 한석규·최민식·송강호 등이 열연을 벌인 작품이다. 날카로운 풍자와 예리한 독설, 그리고 무엇보다 동시대 삶의 허위의식과 권위주의를 절묘하게 비판했던 영화다. 한 시대 삶의 이면을 꿰뚫는 인상 깊은 명대사가 흘러넘쳤던 작품이다.

오늘의 주제와 관련해 이런 대사가 기억난다. 맹혈 검사 최민식이 범죄집단을 소탕하면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익숙한 경구를 비틀어 풍자하는 대사가 그것이다. 맹혈 검사 최민식은 대략 다음과 같이 열폭한다.

“뭐라구?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구. 이런 ×같은 소리가 다 있어. 아니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그 죄를 저지른 놈이 나쁜 거지. 죄가 무슨 죄가 있어.”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유턴 금지’, ‘폭행’, ‘소매치기’ 같은 말 자체는 죄가 없다. 그것을 범한 사람이 잘못한 것이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3S 정책’이란 말이 있다. 섹스(SEX, 성 상품)와 스포츠(SPORTS)·스크린(SCREEN, 영화)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독재정권이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쓰는 문화정책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대중의 정치적 관심을 스포츠 같은 대중문화로 돌리게 해서 권력이 대중의 의식을 마음대로 조작한다는 뜻이다.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이 대표적이다. 30년대부터 등장한 군부세력이 아르헨티나의 20세기를 피로 얼룩지게 했다. 76년에는 각군 사령관으로 이뤄진 쿠데타 세력이 집권해 폭압적인 양상이 향후 몇 년 동안 전개됐다. 그 와중에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을 개최했다.

독재자들의 기획은 성공하는 듯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월드컵에 열광하면서 억압자들을 찬양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나는 '3S 정책'은 궁극적으로 실패한다고 생각한다. '3S', 즉 스포츠·섹스·스크린이라는 대중문화에는 더 즐거운 삶, 더 아름다운 삶, 더 자유로운 삶에 대한 욕망이 담겨 있다. 얼핏 보기에 이런 문화 때문에 대중이 바보가 되는 듯하지만 결국 그 문화 안에 내장된 더 자유로운 삶(그것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에 대한 욕망을 대중은 느끼게 된다. 그래서 권력은 결국 '3S 정책' 대신 검열과 탄압을 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축구장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얼핏 보기에 군부독재의 ‘월드컵을 통한 대중 통제’는 성공하는 듯싶었지만 축구장에서 끓어오른 강렬한 열정은 점점 사회적인 열망으로 이어졌다.

‘축구 종가’라고 불리는 영국에서도 20세기 중엽 그런 일이 있었다. 당시 유럽의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축구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비판했다. 먼저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 비판이다. 고국 독일에서 히틀러 파시즘을 잔혹하게 겪고, 망명지 미국에서 할리우드 상업문화를 목격한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 <프리즘> 등의 저작에서 현대를 ‘총체적 기만’이라고 정의하면서 스포츠·재즈음악·상업영화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영국의 전통적인 문화주의자들, 그러니까 19세기 메슈 아널드의 <교양과 무질서>로부터 비롯되는 이른바 리비스주의자들은 축구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몰입하는 집합적 열광에 대해 싸늘하게 바라봤다. 거침없이 감정을 표현하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경계하고 우려했다.

이런 배경 위에서 새로운 학자들이 등장했다. 50년대 이후 리처드 호가트·레이먼드 윌리엄스·스튜어트 홀 등의 이른바 버밍엄학파가 등장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나 프랭크 리비스로 대표되는 전통 문화주의자에 맞서 축구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통해 분출되는 하위계층의 격렬한 감정 표출을 옹호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그들은 아주 가난한 하위계층 출신이었다. 예컨대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철도 신호수로 힘겹게 일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에 진학한 이들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의 저명한 학자들, 그리고 명문가의 자제들이 하위계층의 삶에 대해 지독히도 무지하고 또 가난한 사람들의 문화를 천박하고 저열하게 여기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영국 문화 전체를 전복적으로 해석하면서 하위계층의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를 시도하게 된다. 이를테면 축구장에서 나타나는 남성 팬들의 ‘형제애’는 훌리건으로 매도될 만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근현대사를 지탱해 온 억압에 대한 저항과 끈끈한 공동체 정신과 자생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또한 축구에 열광하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집합적 열망을 옹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이러한 지적작업에 의해 영국 하위계층의 축구문화는 이윽고 참된 의미를 회복하게 된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와 영화감독 켄 로치

이런 학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도 축구를 포함한 대중들의 문화 전체를 새롭게 인식하고 작품으로 반영하는 일을 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이 영화감독 켄 로치다. 켄 로치는 36년 영국 워릭셔주 너니턴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공군 타자병으로 제대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의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조인 대신 연극·영화 쪽으로 방향을 틀어 버밍엄의 작은 극단에서 연기를 하다가 BBC로 옮겨 프로듀서가 됐다.

버밍엄학파를 대표하는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아버지가 철도노동자였듯이 켄 로치의 아버지 또한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했던 전기노동자였다. 대영제국의 최고 명문 옥스퍼드까지 진학한 철도노동자 집안의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붓으로 자기 가족들의 명예를 지키고자 했다면, 켄 로치는 평생을 옥스퍼드 졸업생이 아니라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가난한 집안 출신의 명석한 학자들이 영국의 ‘전통’을 해부하고 그 문화적 지배의 뿌리깊은 기만성을 폭로한 것처럼 켄 로치는 수많은 영화 속에 가난한 동네의 아버지와 삼촌과 교사와 동네 형들의 상처 입은 삶과 그것을 견뎌 내는 유머의 힘을 복원해 냈다.

그 대표작이 초기작 <케스>다. 단언컨대 켄 로치의 <케스>는 그 숱한 성장기 장면들 중에서도 가슴을 끝내 먹먹하게 만든다. 60년대 영국 탄광지대 소년들의 고통이 축구장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펼쳐진다. 15분 동안 지속되는 체육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어느 고약한 선생님의 모습은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가난한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2009년 작 <에릭을 찾아서>도 축구에 열광하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형제애를 기품 있게 그려 내고 있다. 저임금 노동에 근근이 살아가는 중년 남자들이 축구(이들은 모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광팬이다)를 매개로 더욱 끈끈하게 맺어지는 진정한 형제애를 아름다운 유머로 잘 다루고 있다. 왕년의 축구스타 에릭 칸토나가 직접 출연해 트럼펫을 부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이렇게 영국의 축구는 단지 ‘축구 종가’로서의 세계적인 영향력과 상업성만을 확장해 온 것이 아니라, 지배계층이 경멸하고 하찮게 여긴 축구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거센 열망을 분출하고 그 속에서 뜨거운 형제애를 격렬하게 나누면서 발전해 온 것이다.

‘축구’는 죄가 없다. 그 축구를 나쁜 용도로 쓰려고 한 독재자와 자본의 ‘행동’이 죄인 것이지 축구 그 자체, 더 넓게 말해 대중문화가 원죄를 안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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